비엔나의 궁전/슐로스 쇤브룬

나폴레옹 아들의 발자취

정준극 2008. 2. 19. 09:06

[나폴레옹 아들의 발자취]


폴레옹 1세와 부인 마리 루이제가 아기 나폴레옹 2세와 함께


다음 방은 ‘기념의 방’(Gedenkzimmer)으로서 과거에 도서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방은 특별히 나폴레옹2세인 ‘라이히슈타트 대공’(나폴레옹 프란시스 요셉 보나파르트)을 기념하고 있다. 1809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평화협정을 강화하기 위해 나폴레옹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시스2세(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 1세)의 장녀 마리 루이제(Marie Luise)와의 결혼이 이루어졌다. 마리 루이제로서 보면 정략적으로 강요된 결혼이었다. 결혼식은 1810년 4월 2일 루브르궁전에서 거행되었다. 1811년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제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이 없었던 나폴레옹은 대단히 기뻐하여 이 아기를 로마의 왕으로 임명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비엔나에 머물러 있던 마리 루이제는 마땅히 갈곳이 없어서 아버지 프란시스1세(당시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닌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였음)에게 부탁하여 쇤브룬 궁전의 동쪽 건물에 아들 나폴레옹2세와 함께 거처를 정하였다. 이어 열린 ‘비엔나 회의’(Congress of Vienna)는 나폴레옹2세를 긍휼히 여겨 보헤미아의 도시인 라이히슈타트(Reichstadt)의 대공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그러나 거처는 쇤브룬에 한정한다고 결정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귀양 가자 마리 루이제는 자기의 인생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파르마(Parma)대공과 재혼하여 새출발을 하였다. 나폴레옹2세는 쇤브룬 궁전의 ‘기념의 방’에 혼자 기거하면서 사실상 연금생활을 하다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시스2세의 큰 딸 마리 루이제와의 결혼식. 1810년 4월 2일 루브르궁전.

 

이 방에는 나폴레옹2세의 다섯 살때 모습과 함께 데드 마스크(Death Mask)가 남아 있다. 이처럼 이 방에는 불행했던 나폴레옹2세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념의 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폴레옹2세의 데드 마스크 옆에는 종달새 박제품을 넣은 작은 새장이 하나 놓여있다. 그 종달새는 나폴레옹2세가 쇤브룬 궁전에 있을 때 유일한 친구였었다.  ‘기념의 방’과 연결하여 있는 방이 ‘붉은 살론’(Roter Salon)이다. 도서실의 열람실이었다. 이 방에는 여러개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마리아 테레자의 둘째 아들인 레오폴드2세 황제, 마리아 테레자의 큰 아들인 요셉2세 황제, 18세 때와 68세 때의 프란츠 요셉1세 초상화 등이다. 노년의 프란츠 요셉1세(씨씨의 남편)은 황금양털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붉은 살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 방의 전체 색조가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2세의 어린시절 모습 그림, 데드 마스크, 그리고 탁자 위의 작은 새장. 오른쪽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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