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슐로스 쇤브룬

어린이의 방

정준극 2008. 2. 19. 09:08

[어린이의 방]

‘마리 앙뚜아네트의 방’에 연결되어 있는 방이 ‘어린이의 방’(Kinderzimmer)이다. 마리아 테레자의 자녀들 초상화들이 집중적으로 걸려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방의 색조는 백색 바탕에 금색 장식으로 옆에 있는 ‘마리 앙뚜아네트의 방’과 같다. 다만, ‘어린이의 방’의 커튼과 가구들은 모두 파란색이다. 초상화들은 마리아 테레자의 딸들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안토니아(마리 앙뚜아네트), 마리아 카롤린(나폴리 및 두 시실리의 왕비),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안나, 마리아 엘리자베트이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마리아 테레자의 16명 자녀들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딸들의 이름은 모두 마리아(또는 마리)로 시작하므로 일반적으로 부를 때는 마리아를 빼고 그냥 나머지 이름만 부르는 경우도 있다.   

 

마리아 테레자의 젊은 시절 모습

 

1. 첫째 딸 마리아 엘리자베트 (1737-1740). 6세때 사망

2. 둘째 딸 마리아 안나 (1738-1789). 51세로 사망. 불구자

3. 셋째 딸 마리아 카롤리네 (1740-1741). 1년 넘게 생존하다가 사망

4. 큰 아들 요셉 (1741-1790). 49세로 사망. 아버지의 뒤를 이어 1765년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 1780년부터는 오스트리아 대공, 헝가리 왕, 보헤미아 왕. 파르마의 이사벨라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일찍이 여의고 다시 바바리아의 마리 요제프와 결혼. 후사가 없음.

5. 넷째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1742-1798). 56세로 사망. 마리아 테레자가 가장 총애하는 자녀. 오빠 요셉의 부인인 이사벨라와 동성연애 관계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친밀하였음. 그래서 오빠 요셉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음. 다른 딸들이 정략적 결혼을 한데 비하여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자를 설득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작소니의 알베르트 공자(테셴 대공)와 결혼하였음. 알베르트 공자가 살던 저택이 오늘날 알베르티나 미술관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영묘는 호프부르크의 아우구스틴 교회에 있으며 거장 카노바가 제작한 피라밋 형태의 영묘와 애도하는 조각상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6. 다섯째 딸 마리아 엘리자베트 (1743-1808). 65세까지 살았으나 어릴때 천연두로 얼굴이 심하게 영향을 받아 결혼 대상에서 제외

7. 둘째 아들 샤를르 요셉 (1745-1761). 16세로 세상을 떠남.

8. 여섯째 딸 마리아 아말리아 (1746-1804). 58세로 세상을 떠남. 파르마공작 페르디난드와 결혼함. 자녀는 없음.

9. 셋째 아들 레오폴드 (1747-1792). 45세에 사망. 형 요셉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됨.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자 공주와 결혼. 마리아 테레자의 둘째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셋째 아들인 레오폴드를 보통 둘째 아들이라고 부른다.

10. 일곱째 딸 마리아 카롤리네 (1748년 사산)

11. 여덟째 딸 마리아 요한나 가브리엘라 (1750-1762). 12세에 사망

12. 아홉째 딸 마리아 요제파 (1751-1767). 16세에 사망. 나폴리 왕과 결혼하였으나 사망하여 동생인 마리아 카롤리네가 다시 나폴리 왕과 결혼.

13. 열번째 딸 마리아 카롤리네 (1751-1814). 62세에 사망. 언니 마리아 요제파가 나폴리 왕과 결혼하였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나폴리 왕 페르디난드와 결혼.

14. 넷째 아들 페르디난드 (1754-1806). 62세에 사망. 1803년부터 브라이스가우 대공. 브라이스가우와 모데나의 왕위 계승자인 마리아 베아트리체와 결혼.

15. 열한번째 딸 마리아 안토니아 (1755-1793). 마리 앙뚜아네트. 38세로 죽음. 프랑스의 루이16세와 결혼.

16.다섯째 아들 막시밀리안 프란시스 (1756-1801). 45세로 사망. 1784년 쾰른의 선임 추기경이 됨.

 

 마리아 테레자와 프란시스 황제의 가족 (마리아 테레자 왼쪽의 키큰 남자가 나중에 황제가 된 요셉, 오른쪽 끝이 나중에 황제가 된 레오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