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Prinz Eugen)]
1663-1736
레오폴드1세-요셉1세-카를6세 시대의 위대한 장군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는 합스부르크 혈통의 인물은 아니지만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되는 인물이다. 오이겐 공자는 레오폴드1세로부터 요셉1세를 거쳐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카를6세(샤를르6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장군이다. 오늘날 오이겐 공자의 기념상은 비엔나 호프부르크(Neue Hofburg) 앞에 우뚝 서 있다. 비엔나의 기념비적인 건물인 벨베데레(Belvedere)궁전은 오이겐 공자가 지내던 곳이었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사보이(Savoy) 왕가 출신의 오이겐 공자(Prinz Eugen: 유진)는 1663년 10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736년 4월 21일 향년 73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위대한 장군이며 정치가였다. 합스부르크의 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마자린(Mazarin) 추기경은 그의 삼촌이다. 마자린 추기경은 합스부르크의 레오폴드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될 당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합스부르크 가문이 아닌 바바리아 왕가에서 만들려고 대음모를 꾸몄던 인물이다. 오이겐 공자는 삼촌인 마자린 추기경과는 달리 합스부르크를 위해 헌신하였다. 오이겐은 20세의 청년으로서 프랑스 군대에 입대코자 하였다. 그러나 사보이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시 사보이 공국은 스위스의 아래쪽, 프랑스의 동쪽 끝 지중해에 면한 작은 나라였다. 이에 오이겐은 그해에 신성로마제국군에 들어가 터키의 비엔나 공성에서 비엔나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이후 오이겐 공자는 1689년에 이르기까지 헝가리에서 오토만 터키의 세력을 물리치는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으며 1693년까지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군대와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97년 오이겐 공자는 신성로마제국군의 최고 사령관이 되어 터키와의 전쟁을 수행하였다. 오이겐 공자는 젠타(Zenta: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서 터키군을 완전히 물리쳤다. 그는 1700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스페인왕위계승전쟁에 신성로마제국의 사령관으로서 크게 활약했으며 특히 1704년에는 영국의 말보로(Marlborough) 공작과 협동하여 바바리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돌이킬수 없는 참패를 안겨주기도 했다. 오이겐 공자의 활약은 종횡무진이었다. 1706년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Torino)를 해방시켰으며 1708년에는 역시 말보로 공작과 함께 우덴나르드(Oudennaarde)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1709년에는 말플라케트(Malplaquet)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호프부르크 앞의 영웅광장(헬덴플라츠)에 있는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
오이겐 공자의 비엔나에 대한 업적중 하나는 비엔나 성벽을 완성한 것이다. 이로써 비엔나는 도시가 생긴 이래 외적을 방어할수 있는 완벽한 성벽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의 업적은 비엔나에 위대한 바로크 건물들을 남긴 것이다. 오이겐 공자는 레오폴드1세, 요셉1세, 샤를르6세(마리아 테라자의 아버지)에 걸쳐 황제를 돕는 최측근 자문관이었다. 그 중에서 카를6세의 시대는 오스트리아 바로크의 황금시기라고 할 정도로 바로크 예술이 꽃을 피운 시대였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쇤브룬 궁전을 바로크 궁전으로 대폭 개축한 것은 대표적인 일이었다. 오이겐 공자도 바로크 예술에 대한 애호가였다. 그가 당대의 건축가인 피셔 폰 에어라흐(Fischer von Erlach)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벨베데레(Belvedere)궁전은 바로크 예술의 정수이다. 오늘날 벨베데레 궁전은 미술관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밖에도 1구의 힘멜포르트가쎄(Himmelpfortgasse)에 있는 오이겐 공자의 겨울 궁전도 바로크 건축의 정수이다. 오이겐 공자의 또 다른 바로크 건축물은 마르흐펠트(Marchfeld)에 있는 슐로쓰호프(Schlosshof)이다. 오이겐 공자는 애서광(愛書狂)이었다. 그가 수집한 귀중본들은 비엔나 국립도서관 그랜드 홀의 오이게니아나(Eugeniana) 코너에 영구 보전되어 있다.
오이겐 공자의 여름 별장이었던 벨베데레 궁전 (Upper Belvedere)
오이겐 공자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오이겐 공자는 1736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석관은 슈테판성당에 있다. 오이겐 공자의 기념상은 비엔나 호프부르크의 영웅광장(헬덴플라츠)에 우뚝 서있지만 부다페스트와 토리노에도 기념상이 있다. 하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오이겐 공자 기념상은 그를 신격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오이겐 공자의 업적을 기리는 그림, 흉상, 기타 기록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오이겐 공자의 여름 별장이던 벨베데레 궁전의 정원에 있는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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