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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의 삼촌 요셉1세 (Joseph I)

정준극 2008. 2. 3. 07:04

마리아 테레지아의 삼촌 요셉1세

1678-1711 (통치기간: 1705-1711)


[레오폴드1세의 아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요셉1세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삼촌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샤를르6세(카를6세)의 형이다. 요셉1세는 1705년부터 1711년까지 불과 6년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 헝가리와 보헤이마의 왕이었다. 요셉1세가 누구인지 알려면  우선 아버지 레오폴드1세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요셉1세의 아버지 레오폴드1세(1640-1705)는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스페인의 마르가레트 테레사(Margaret Theresa)였다. 15세에 레오폴드와 결혼하여 4자녀를 생산하고 22세로 세상을 떠났다. 4자녀들중 누구도 레오폴드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지 못했다. 두 번째 부인은 오스트리아의 클라우디아 펠리시타스(Claudia Felicitas)였다. 티롤공국 출신이다. 그 역시 결혼후 22세에 세상을 떠났다. 딸 둘을 두었으나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세 번째 부인은 팔라티네이트(Palatinate)선제후령의 공주 엘레오노레(Eleonore)였다. 무려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중 큰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레오폴드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셉1세이다. 요셉1세가 재위 6년만에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황제의 자리는 동생중에서 카를(샤를르: 나중에 샤를르6세)이 이어 받았다. 카를의 딸이 마리아 테레자이며 그 다음은 잘 아는 대로 요셉2세(마리아 테레자의 큰아들)-레오폴드2세(마리아 테레자의 둘째 아들)-프란츠2세(레오폴드2세의 아들)-페르디난트1세(프란츠2세의 아들)-프란츠 요셉1세(페르디난트1세의 조카: 씨씨의 남편)-카를1세(프란츠 요셉1세의 막내 동생의 손자)까지 이어졌다가 오스트리아제국의 소멸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을 고하였다. 서로 이름들이 비슷비슷하므로 단단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HRE) 요셉1세

 

다시 요셉1세로 돌아가보자. 요셉1세는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다음 군주로서의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특히 어학훈련을 많이 받아 나중에는 언어학자가 될 정도였다. 요셉1세는 1687년, 9세 때에 헝가리 왕으로 책봉되었으며 12세 때에는 로만스(Romans) 왕으로 대관식을 가졌다. 로만스는 이탈리아의 로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루마니아 지방 일원으로 합스부르크가 통치하던 지역을 말한다. 1702년, 그가 2세 때에 이른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바덴-바덴 총독인 루이스 윌리엄(Louis William) 휘하에 들어가 잠시 군대생활을 하였다. 청년 요셉1세는 란다우(Landau) 공성에서 맹활약을 했다. 어느날 그가 적군이 포진하고 있는 위험지역에 진군하려하자 휘하 장군들이 만류하였다. 그러자 요셉1세는 ‘누구든지 두려운 자는 퇴역하라!’면서 병사들을 이끌었다. 요셉1세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1705년 아버지 레오폴드1세가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나자 27세의 청년 요셉이 요셉1세로서 신성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통치령의 군주가 되었다. 사보이의 오이겐(Eugen)공자가 장군으로 활약하고 있을 때 요셉1세가 오스트리아와 인접 영토를 통치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훌륭한 장군을 두어 합스부르크의 위상을 드높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는 이탈리아, 독일, 플란더스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항하는 세력들을 무찌르며 제국을 든든한 기반위에 올려놓았다. 요셉1세의 치하에서 헝가리의 프란시스 라코치(Francis Rakoczi)가 제국에 반항하여 전쟁을 일으켜 제국으로서는 매우 힘든 시기였으나 이 또한 오이겐 공자의 활약으로 쫓아냈다. 프란시스 라코치는 오토만 제국에 망명하였다.

 

 갑옷 입은 요셉1세


요셉1세는 예술과 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이는 아마도 가문의 유전일 것이다. 그는 로마교황로부터 독립하려고 노력했으며 로마가톨릭에 빌붙은 예수회에 대하여는 적대적이었다. 이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버지 레오폴드가 반대파들을 배척하는 정책을 추진한데 비하여 요셉1세는 반대자들과 되도록 화해하여 평온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요셉1세는 199년 브룬스비크-뤼네부르크(Brunswick-Lüneburg)의 프레데릭 대공의 딸 빌헬미나 아말리아(Wilhelmina Amalia)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마리아 요제파(Maria Josepha), 레오폴드 요셉(Leopold Joseph), 마리아 아말리아(Maria Amalia)이다. 마리아 아말리아(1701-1756)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7세(Charles VII)와 결혼하였다. 유일한 아들인 레오폴드 요셉(1700-1701)은 태어난 다음해에 죽었다. 그래서 남동생인 카를(샤를르6세)이 뒤를 이었다.  요셉1세의 후손으로서는 프랑스의 루이14세, 스페인의 카를로스4세, 요셉2세 황제와 결혼한 바바리아의 마리아 요제파, 그리고 여러 명에 이르는 폴란드 왕이 있다. 요셉1세는 1711년 천연두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