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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필립2세의 네번째 부인 안나 (Anna of Austria)

정준극 2008. 2. 20. 11:27

스페인 필립2세 국왕의 네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안나 공주 1549-1580

 

오스트리아의 안나(Anna 또는 Anne: 1549-1580)는 스페인 국왕 필립2세(필리페2세)의 네 번째 부인이다. 안나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2세 황제와 스페인의 마리아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이다. 안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페인의 섭정으로 있을 때에 스페인의 발라돌리드(Valladolid)에서 태어났지만 4살 때 부모와 함께 비엔나에 와서 살았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안나라고 부른다. 안나는 필립2세의 아들인 돈 카를로스(Don Carlos) 왕자와 약혼했었다. 돈 카를로스(프랑스에서는 돈 카를로)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주인공인 바로 그 돈 카를로이다. 그러나 돈 카를로 왕자가 1568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결혼할수 없게 되었다. 마침 필립2세의 세 번째 부인인 엘리자베트 왕비도 돈 카를로 왕자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리히 쉴러의 소설과 베르디의 오페라로서 잘 알려진 대로 돈 카를로 왕자와 프랑스의 엘리사베트 공주는 약혼한 사이였다. 그러나 엘리사베트 공주는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평화협정에 의해 시아버지가 될뻔 했던 필립2세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신랑 필립2세와 신부 엘리사베트는 무려 18세 차이였다. 사랑하는 돈 카를로와 결혼하지 못하고 시아버지가 될뻔 했던 필립2세와 결혼해야만 했던 비운의 엘리사베트는 돈 카를로가 세상을 떠난 그 해에 천연두에 걸려 역시 세상을 떠났다.

 


필립2세의 네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안나

 

부인을 잃은 필립2세는 신부감을 고르는 중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또 다시 아들 돈 카를로와 약혼까지 했던 오스트리아의 안나와 결혼하게 되었다. 더구나 필립2세는 안나의 삼촌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합스부르크 사람들은 참으로 착했다. 그저 부모의 지시에 순종하여 삼촌과 결혼하라고 하면 했고 오빠와 결혼하라고 하면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아침에 삼촌이 ‘여보’가 되었고 오빠가 ‘여보’가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근친간의 결혼은 열성유전(劣性遺傳)을 유발한다. 합스부르크 출신에 정신이상자, 신체부자유자 등이 다수인 것은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당시의 교황 비오5세(Pius V)는 필립2세와 안나의 결혼을 반대했다. 삼촌과 조카의 결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의 신성로마제국 및 스페인의 권위에 눌려서 결국 결혼을 승인할수 밖에 없었다. 필립2세와 안나 공주는 1570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인 프라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비록 나이 차이가 30년이 넘는 삼촌과 조카사이였지만 종사를 보존한다는 거룩한 사명감으로 5명의 자녀를 두었다. 하나님은 이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하였던 것 같다. 하나님은 5명의 자녀중 4명을 일찍 불러 가셨다. 하지만 학자들은 근친결혼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큰 아들 페르난도(Fernando)는 7세에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 카를로스 로렌조(Carlos Lorenzo)는 2살 때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 디에고 펠릭스(Diego Felix) 역시 7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넷째 아들 필립(Philip)만이 43세까지 살았다. 아버지 필립2세의 뒤를 이어 필립3세가 된 사람이다. 막내는 딸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3세의 어린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필립2세는 1580년에 포르투갈 국왕까지 겸하게 되었다. 안나도 스페인 왕비 및 포르트갈 왕비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1580년, 안나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남편 필립2세도 함께 전염병에 걸렸으나 용하게 살아남았다. 필립2세는 안나가 세상을 떠난후 18년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71세에 조상들이 있는 납골당으로 들어갔다.

 

안나의 아들 필립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