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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데론의 드라마 '인생은 꿈이다'

정준극 2008. 2. 20. 11:30

인생은 꿈이다

Life is a Dream (La vida es sueno)

페드로 칼데론의 희곡


17세기 스페인 전성기의 극작가인 페드로 칼데론 드 라 바르카(Pedro Calderon de la Barca: 1600-1681)의 대표작인 ‘인생은 꿈이다’(La vide es sueno)는 스페인 국왕인 필립2세(Philip II)과 그의 아들 카를로스 왕자(Don Carlos)의 비극을 코미디로 표현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프리드리히 쉴러가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스'에서 설명해 놓은바 있고 쉴러의 작품을 바탕으로 베르디가 저 유명한 오페라인 '돈 카를로'를 작곡한바 있다. 칼데론의 ‘인생은 꿈이다’는 스페인이 아니라 폴란드를 무대로 삼고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칼데론 기념비에는 연극의 한 장면을 부조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칼데론의 드라마 '인생은 꿈'의 한 장면. 마드리드의 칼데론 기념비 부조.


[줄거리]

폴란드 왕은 왕자 세기스문도(Segismundo)가 태어날 때 이 왕자가 앞으로 폴란드에게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왕은 왕자를 비밀 감옥에 가두고 신하들에게는 왕자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말한다. 왕자가 장성하자 왕은 비로소 신하들에게 왕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고 밝히고 그가 다음 왕위를 계승하는데 도와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왕자는 난폭해져서 사람을 죽이고 여인을 강간하는 등 악인이 되어 있었다. 왕자는 체포되어 겨우 약으로 진정시켜 다시 감옥에 갇힌다. 이튿날 겨우 일어난 왕자는 어제의 사건은 다만 꿈이었다고 말한다. 간수는 왕자가 왕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힐난한다. 그 말을 들은 왕자는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한편, 왕이 왕자를 태어나자마자 감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왕의 처사를 증오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백성들은 감옥을 깨트리고 왕자를 구해낸다. 왕의 군대가 도착하지만 폭도로 변한 백성들은 왕의 군대를 물리친다. 왕자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또는 실제상황인지를 몰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결국 왕자는 아무리 꿈이더라고 좋을 일을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왕자는 왕을 용서한다.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기에서 왕은 필립2세를 말하며 왕자는 돈 카를로스를 의미했다. 이제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페드로 칼데론 드 라 바르카


[제1막: 제1일]

로사우라(Rosaura)는 남자로 변장하고 종자 클라린(Clarin)만 데리고 폴란드의 왕궁으로 향한다. 결혼까지 약속한 아스톨포(Astolfo)가 결혼을 파기했기 때문에 복수하러 가는 것이다. 로사우라는 아버지가 남겨준 단검을 폼에 안고 있다. 로사우라는 한번도 아버지를 만나본 일이 없다. 밤중에 폴란드에 도착한 로사우라는 왕궁의 탑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본다. 궁전으로 침입하려는 로사우라와 클라린은 탑으로 올가가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은 세기스문도(Segismundo)가 태어난 이후로 갇혀 있는 감옥이다. 로사우라가 들어온 것을 알지 못하는 세기스문도는 그 유명한 독백을 한다. Ay! Misero de mi, ay, infelice(아, 나의 비통함이여, 아, 불운이여)는 자기의 불행을 삼키는 독백이다. 세기스문도는 온갖 새와 짐승과 물고기들, 그리고 심지어 시냇물까지도 자유스러운데 어찌하여 자기는 자유를 박탈당하여 있는가라는 내용이다.

노신하인 클로탈도(Clotaldo)가 감옥 근처에서 로사우라와 클라린을 발견하고 수상히 여겨 체포한 후 왕에게 데려온다. 누구도 세기스문도의 존재를 알아서는 안되었다. 클로탈도는 우연히 로사우라가 지니고 있는 단검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기의 단검인 것을 단번에 알아본다. 클로탈도는 로사우라가 자기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클로탈도는 왕에 대한 충성과 딸을 구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갈등에 싸인다. 그러나 클로탈도는 일단 로사우라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테아트로 데 라 에아니쿠스 무대


[제2막: 제2일]

2막에서는 어찌하여 세기스문도가 태어난 직후부터 감옥에 갇혀 있는지를 설명 되어 있다. 폴란드의 국왕인 바실리오(Basilio)는 새로 태어나는 왕자가 장차 나라를 위험에 빠트릴 잔혹한 왕이 될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바실리오(Basilio)는 어린 세기스문도를 아무도 모르게 탑속의 감방에 가두고 신하들에게는 태어난 아이가 죽었다고 말한다. 세월이 흐른다. 바실리오도 이젠 늙었다. 바실리오는 세기스문도가 정말 잔혹한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계획을 꾸민다. 바실리오는 세기스문도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후 왕궁으로 데려오도록 한다. 그리고 짐짓 왕자로서 대우를 한다. 바실리오는 만일 세기스문도가 예언대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면 꿈을 꾸었다고 말해주고 다시 감옥에 넣을 생각이었다. 한편, 로사우라는 별다른 혐의가 없어 석방된다. 로사우라는 훌륭한 숙녀로 인정받아 에스트렐라(Estrella) 공주의 시녀로 들어간다. 에스트렐라 공주는 마음에도 없는 아스톨포와 결혼해야 할 형편에 있다. 


하엔대학교 무대


세기스문도는 왕궁에서 포악한 왕자로 행동한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시종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마침 아스톨포를 찾으러 다니는 로사우라를 강간하려 한다. 로사우라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클로탈도가 겨우 자기의 딸을 위기에서 구한다. 로사우라와 약혼했던 아스톨포는 자기에게 복수하기 위해 로사우라가 신분을 속이고 왕궁에 들어 온 것을 알고 오히려 로사우라를 해치려한다. 이 모습을 본 클로탈도가 아스톨포를 제지하기 위해 칼싸움을 벌인다. 클로탈도는 왕족인 아스톨포를 살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한편, 아침 일찍부터 세기스문도의 행동을 지켜본 왕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세기스문도에게 다시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후 탑으로 데려간다. 감방에서 정신을 차린 세기스문도는 어제 하루의 일이 모두 꿈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연극의 타이틀이 된 유명한 구절을 독백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광란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영이다. 그림자이다. 픽션이다.

 인생으로 얻을 이익은 매우 적다. 왜냐하면 인생은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은 꿈일 뿐이다.”


이 독백은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와 같은 형태이다.


안토니오 데 페레다 작 '인생은 꿈이다'


[제3막: 제3일]

폴란드의 어느 마을이다. 백성들은 이 나라에 왕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킨다. 백성들은 마침내 세기스문도를 탑의 감옥에서 구출한다. 세기스문도는 클로탈도를 석방하고 국왕을 따라가도록 허락한다. 세기스문도는 자기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사우라는 아버지 클로탈도를 처음으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로사우라는 세기스문도에게도 아스톨포에게 복수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국왕의 군대와 왕자를 지지하는 병사들이 접전을 벌인다. 왕자의 병사들이 승리한다. 왕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인 국왕을 만난다. 국왕은 왕자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왕자가 먼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왕자는 왕자로서의 관용으보여준 것이다. 국왕은 그런 왕자에게 왕좌를 내어준다. 국왕이 된 세기스문도는 아스톨포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결정하여 로사우라와 결혼토록 한다. 그리고 자기는 에스트렐라 공주와 결혼한다. 모두 해피 엔딩이다.


스페인 하엔대학교 무대


[주제분석]

‘인생은 꿈이다’의 주제는 기독교 전설인 ‘발람과 요사밧’(Barlaam and Josaphat)에서 가져온 것이다. ‘발람과 요사밧’ 스토리는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a Gautama)의 왕자 시절의 스토리에서 빌려온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스토리는 최근 영화인 ‘리틀 부다’(Little Buddha)에서 볼수 있듯 힌두-불교의 실존 개념을 환상으로 설명한 것이다. 또 다른 종교적 개념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성론(Free-will)과 예정론(Predestination)에 대한 것이다. 가톨릭인 스페인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협동하여 선함을 택할수 있다고 주장한 반-개혁(Counter-reformation)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칼빈주의가들이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여김을 받아 예정되지 않는 한 완전히 무시해야하다는 주장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세기스문도는 예언보다는 관용을 선택하였다.

 

마드리드에 있는 페드로 칼데론 드 라 바르카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