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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국보적 존재 Aino Ackté (아이노 아크테)

정준극 2008. 2. 26. 16:03
 

핀란드의 국보적 존재 Aino Ackté (아이노 아크테)

  

  


청초하면서도 육감적인 미모의 아이노 아크테는 핀란드 출신으로 20세기 초반 국제적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던 스타였다. 핀란드에서는 아크테를 시벨리우스와 마찬가지로 높이 존경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헬싱키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이노 아크테 거리’가 있다. 사본린나(Savonlinnna) 부근의 공원에는 역시 그의 이름을 딴 기념 거리가 있다. 헬싱키에 있는 그의 별장이었던 Villa Aino Ackté는 헬싱키 시(市)가 임대하여 문화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아크테의 가장 큰 공로는 현재의 핀란드국립오페라단을 창단한 것이다. 그는 1911년 코티마이넨 오오페라(Kotimainen Ooppera)라는 오페라단을 설립하여 활동했고 얼마후 이 오페라단이 핀란드국립오페라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크테는 몇 년동안 핀란드국립오페라의 단장을 맡아 핀란드의 오페라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가지 아크테의 기여는 1912년부터 사볼린나 오페라 페스티발을 설립하여 젊은 성악도들에게 오페라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준것이다. 이 페스티발은 1930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전통은 현재의 핀란드국립오페라가 이어 가고 있다. 아크테는 핀란드 예술가들과의 교분을 위해 동호회를 만들어 국가 예술 부흥을 위해 힘을 모았다. 그중에는 유명한 화가 알베르트 에델펠트(Albert Edelfelt)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델펠트는 아크테의 전신 초상화를 그려 핀란드 국립 오페라에 기증하였다. 이 초상화는 핀란드국립오페라에 전시되어 있다.

 


1876년 헬싱키에서 태어난 아크테의 어머니는 메조소프라노 에미 아흐테(Emmy Achte)였으며 아버지는 지휘자 겸 작곡가인 로렌즈 니콜라이 아흐테(Lorenz Nikolai Achte)였다. 아크테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서 음악을 공부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가르침은 뛰어났다. 그후 파리에 유학을 가서 파리음악원을 다녔고 1897년, 아직도 신인이었던 21세때에 파리의 그랑 오페라에서 마르게리트(파우스트)로서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이 공연에서 아크테는 대단한 찬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파리 오페라와 6년간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 젊은 신인에게는 파격적인 일이어서 당시 파리 오페라계를 놀라게 했다. 파리에서의 활동 이후, 아크테는 메트로와 계약을 했고 이어 코벤트 가든과 계약을 맺었다. 1913년 이들 계약이 끝나자 아크테는 고국인 핀란드로 돌아와 활동하였다. 그는 1920년, 44세 때에 고별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아크테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은 1930년 사볼린나 오페라 페스티발에서였다. 그 후에는 스테이지 보다는 오페라단 설립과 공연주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44년 아크테는 췌장암으로 비티(Vihti)라는 곳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핀란드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