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바그너 신화의 창조자 Birgit Nilsson (비르기트 닐쓴)

정준극 2008. 2. 26. 17:08
 

▒ 바그너 신화의 창조자 Birgit Nilsson (비르기트 닐쓴)

 

 

 

비르기트 닐쓴은 금세기 최고의 바그너 소프라노이다. 닐쓴은 독일적 영웅 소프라노의 대명사이다. 비르기트 닐쓴은 스웨덴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다. 어찌보면 배우 잉그릿드 버그만보다도 더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가였다. 닐쓴은 1918년 5월 17일 남부 스웨덴 스카네 지방의 바스트라 카로프(Vastra Karup)에서 태어났다. 첫 오페라 데뷔는 28세 때인 1946년 스톡홀름 오페라극장에서의 ‘마탄의 사수’에서 아가테를 맡은 것이었다. 공연 단 3일을 남겨 놓고 확정된 배역이었다. 아가테로 대단한 호평을 받은 닐쓴은 이듬해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맡아 다시한번 커다란 갈채를 받았다. 1958년 그는 라 스칼라로부터 투란도트를 공연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라 스칼라 데뷔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듬해인 1959년은 닐쓴으로서 잊을수 없는 해이다. 메트로폴리탄에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를 맡아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비르기트 닐쓴의 이름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닐쓴의 대단한 공연을 잊지 못한 메트로는 7년후 닐쓴에게 탄호이저의 출연을 제안하였다. 닐쓴은 탄호이저 공연에서 비너스와 엘리자베트의 두 역을 동시에 맡아하는 기록을 세웠다. 물론 비너스와 엘리자베트는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한 작품에서 두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명성을 가장 크게 높여준 역할은 투란도트, 이졸데, 그리고 니벨룽의 반지에서 브륀힐데였다. 닐쓴은 메트로의 음악 총감독인 루돌프 빙과 각별한 우정을 다지며 지냈다. 언젠가 누가 루돌프 빙에게 ‘비르기트 닐쓴에게 그렇게 많은 출연료를 주면 메트로가 곤란할텐데!’라고 말하자 그는 ‘투자를 많이 하면 할수록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소리가 나오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 어느날 누가 닐쓴에게 소득세와 관련해서 부양가족이 있느냐고 묻자 닐쓴은 ‘루돌프 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였다. 닐쓴은 1984년 무대에서 은퇴하여 스톡홀름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는 30세 때에 기차여행에서 만난 수의과 학생 베르틸 니클라쓴과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웨덴 왕립오페라극장은 닐쓴의 80회 생일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80회 생일 하루 전날인 1998년 5월 16일 갈라 콘서트를 갖기로 한 것이다.  오페라 극장측은 닐쓴에게 이날 꼭 참석하여 줄것을 몇 번이나 간절히 요청했으나 겸손한 닐쓴은 번번이 민망스럽다고 하며 사양하였다. 결국 두달에 걸친 간절한 설득 끝에 닐쓴으로부터 참석하겠다는 회답을 들었다. 갈라 콘서트 당일 날 저녁 초청인사들은 모두 오페라 극장 밖에 나와서 닐쓴의 도착을 기다렸다. 드디어 닐쓴이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밴드가 팡파레를 울렸으며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닐쓴이 극장안의 좌석에 앉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왕립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거장 라이프 세게스트람(Leif Segestram)이 지휘했고 총감독은 닐쓴이 출연했던 오페라의 무대 연출을 맡았던 폴케 아비니우스(Folke Abenius)였다. 이날의 합창단은 닐쓴의 장학금을 받은 젊은 음악도들로 구성되었다. 갈라 콘서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다른 솔리스트들이 닐쓴이 출연했던 오페라들의 아리아를 불러 감격을 더해주었다. 마지막 솔리스트는 닐쓴 장학금을 받아 진출한 안나 라르쓴 (Anna Larson)으로 생-생의 Mon coeur s'ovre ta voix을 불러 축하 음악회의 절정을 이루었다.

 

투란도트


음악회가 끝나자 드디어 닐쓴이 무대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한없는 박수를 보냈다. 겨우 박수 소리가 진정되자 닐쓴은 특유의 억양으로 ‘저는 단지 태어났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저의 부모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닐쓴이 무대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여 축사와 축가를 불렀다.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왕실을 대신하여 ‘이미 비르기트 닐쓴 여사에게는 수여할수 있는 모든 훈장과 메달을 수여했으므로 더 이상 수여할것이 없으므로 여사의 80회 탄신을 기념하여 정부는 여사를 스웨덴의 공로교수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닐쓴은 스웨덴의 어느 대학에서든지 교수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마지막 순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세계적 성악가들과 유명인사, 그리고 일반 팬들이 모두 손을 잡고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부른 것이었다. 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끝날줄 몰랐다.

 


브륀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