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귀부인 Elisabeth Schwarzkopf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영원한 귀부인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기품있는 미모와 풍부하며 고요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디바 중의 귀부인이었다. 그의 원래 세례명은 ‘올가 마리아 엘리자베트 프레데리케 슈봐르츠코프였다. 1915년 12월 9일 현재는 폴란드이지만 당시에는 프러시아에 속했던 야르친(Jarci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슈봐르츠코프였고 어머니는 엘리자베트 프뢸링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름과 아버지의 성을 따서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중에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는 영국의 유명한 레코드 제작자인 월터 레게와 결혼하여 영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지만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라는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레게라고 적었다. 엘리자베트는 아주 어릴때부터 음악에 대한 특별한 소질을 보여주었다. 아직 소녀인 13세 때에 독일 마그데부르크 학교 오페라인 ‘오르페오와 유리디체’에서 유리디체 역을 맡은 것이 첫 오페라 출연이었다. 엘리자베트는 아버지를 따라 야르친을 떠나 독일의 마그데부르크에와서 학교에 다녔었다. 그 이후로 소녀 엘리자베트는 학교 행사를 비롯하여 마그데부르크에서 무슨 음악행사가 있으면 기회가 있는대로 참가하여 재능을 뽐내었다. 예쁜 엘리자베트에 대하여 사람들은 박수와 찬사를 열심히 보냈다.
데뷔 시절
1934년, 엘리자베트는 베를린음악대학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처음에 지도교수는 엘리자베트를 메조소프라노로서 훈련을 시켰다. 엘리자베트의 어머니는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여 학교에 지도교수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에고놀프(Egonolf)박사는 엘리자베트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 확신하고 그 방면으로 교육을 했다. 몇 년후 엘리자베트는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Deutshce Oper)의 청년 단원으로 들어갔다. 1938년이었다. 1938년이면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해이다. 도이치 오퍼의 단원으로 들어간지 2일후 엘리자베트는 바그너의 파르지팔에서 제2 꽃처녀의 역을 맡았다. 당시는 히틀러가 집권하던 나치의 시대였기 때문에 엘리자베트도 나치 당원으로 가입하였다. 아마 어쩔수 없는 가입이었을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베를린에서 살았다. 단 한번, 도이치 오퍼가 1941년 파리 오페라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를 공연하러 갔을 때만 베를린을 떠났었다. 엘리자베트는 ‘박쥐’에서 아델레를 맡아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46년, 엘리자베트는 도이치오퍼를 떠나 영국으로 갔다. 이곳에서 당시에 영향력있는 음반 제작가인 월터 레거를 만나 결국 결혼하였다. 그후 비엔나로 가서 유명한 Theater an der Wien(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가 초연된 유서 깊은 극장)의 소속이 되었다. 이곳에서 엘리자베트는 미미와 비올레타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그는 오스트리아로 국적을 바꾸었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에서 보다 용이하게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얼마후에는 이제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아래 1950년 비엔나 오페라단을 떠났다.
아름다운 슈봐르츠코프(슈봐르츠코프는 검은 머리라는 뜻)
슈봐르츠코프는 아마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 한 오페라에 두 이름으로 출연한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1941년 10월, 비엔나에서 ‘박쥐’를 공연할 때에 처음에는 아델레를 맡았으나 다음번 공연부터는 별볼일 없는 이다(Ida)역을 맡으라는 주문이었다. 화가난 슈봐르츠코프는 그 다음 공연도중 무대 배경을 장식한 대형 캔버스 스크린을 구두발로 차버려 못쓰게 만들었다. 극장측은 보복으로 다음 공연부터는 엘리바베트 슈봐르츠코프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다른 이름을 사용토록 했다. 그리하여 다음 공연인 파르지팔부터는 한달동안 마리아 헬퍼(Maria Helfer)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47-48년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가 유럽 순회공연에 나섰을때 슈봐르츠코프도 참가하게 되었다. 슈봐르츠코프는 유럽의 유명 오페라 극장에 데뷔할수 있었다.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는 '돈 조반니'의 돈나 엘비라를 맡았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는 ‘장미의 기사’에서 마샬린을 맡았다. 그러나 이것은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순회공연에 의한 것이었고 진짜 슈봐르츠코프의 로얄오페라하우스 데뷔는 1948년 ‘마술피리’의 파미나를 맡은 것이었으며 라 스칼라 정식 데뷔는 1950년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연주에서 솔리스트로 출연한 것이었다. 슈봐르츠코프는 1964년이 되기까지 메트로에 데뷔하지 못했다. 메트로 데뷔는 ‘장미의 기사’의 마샬린이었다. 슈봐르츠코프가 50세 되던해였다. 중년의 슈봐르츠코프에게 마샬린은 최적의 역할이었다. 메트로 데뷔는 대성공이었고 사람들은 슈봐르츠코프의 미성과 미모에 열광하였다.
그냥 찍은 사진
1946년, 슈봐르츠코프는 클래식 음악 음반 취입계에서 유명한 인물인 발터 레게 (Walter Legge)로부터 음반 취입을 위한 오디션을 받게 되었다. 슈봐르츠코프는 휴고 볼프의 예술가곡 Wer rief dich denn?을 불렀다. 제작자 레게는 두말하지 않고 슈봐르츠코프와 EMI 계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파트너가 되었다. 레게는 슈봐르츠코프의 매니저 겸 인생 동반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1953년 영국의 엡솜(Epsom)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60년부터 67년까지 슈봐르츠코프는 다섯 편의 오페라 타이틀 롤에만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돈 조반니의 돈나 엘비라, ‘피가로의 결혼’에서의 백작부인, ‘장미의 기사’에서의 마샬린 (슈바르츠코프를 상징하는 역할), ‘여자는 다 그래’에서의 휘오르딜리지, 카프리치오에서의 마델레이느 백작부인이었다. 이 기간 동안 슈바르츠코프는 베르디의 활슈타프에서 앨리스 포드(Alice Ford)역할을 맡아 찬사를 받았다. 슈봐르츠코프는 세계 초연 오페라에 두 번이나 출연했었다. 1951년 스트라빈스키의 ‘레이크의 인생 역정’(The Rake's Progress) 초연에서 앤 트루러브역을 맡은 것과 1951년, 아더 커스터러(Arthur Kusterer)의 카타리나(Katarina)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다.
비올레타
슈봐르츠코프의 마지막 오페라 무대는 1971년 브뤼셀에서 ‘장미의 기사’였다. 그 이후 6년동안 그는 세계 여러곳을 순방하여 가곡연주회를 가졌다. 가는 곳마다 환영의 인파가 장사진이었다. 1976년에는 영국의 캠프릿지 대학교로부터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3월, 뜻하지 않게 남편 레게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안정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슈봐르츠코프의 취리히 리사이틀을 함께 갔었다. 리사이틀 3일후 레게는 숨을 거두었다. 슈봐르츠코프는 은퇴를 선언하고 오스트리아 포아아를버그주의 슈룬스에 있는 자택에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가 2006년 8월 2일-3일에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날짜가 정확치 않은 것은 2일 밤부터 일 아침 사이에 숨을 거두었는데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슈봐르츠코프는 남편 레거의 유분과 함께 취리히 근처 추미콘(Zumikon)이라는 마을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부모의 묘지의 옆이다. 슈봐르츠코프는 1992년 엘리바베스 영국 여왕으로부터 DBE, 즉 대영제국의 귀족 Dame 칭호를 받았다. 슈봐르츠코프는 수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주로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주인공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네개의 마지막 노래'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술가곡들을 음반으로 남겼다. 특히 휴고 볼프의 가곡은 놀라운 표현과 해석이었다.
백작부인 (피가로의 결혼)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가 받은 영예는 대략 다음과 같다.
- 1950: 릴리 레만 메달. 모차르테움 국제재단. 잘츠부르크
- 1959: 오르페오 도로(). 만투아
- 1969: 오르페 도르() 레코딩 상. 아카데미 뒤 디스크 리리크. 파리
- 1961: 에디슨 상. 암스테르담
- 1961: 도이체 캄머쟁거린 타이틀
- 1964: 왕립스웨덴음악원 명예 회원
- 1967: 유럽 최우수 소프라노에게 주는 스톡홀름 텔리비전상
- 1971: 휴고 볼프 메달
- 1974: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훈장
- 1982: 프랑크푸르트시의 모차르트 메달
- 1983: 비엔나 슈타츠오퍼 명예 멤버. 캄머쟁거린 타이틀 수여
- 1986: 프랑스 문화훈장(Commandeu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 1991: UNESCO 모차르트 메달
- 1992: 대영제국 Dame Commander
- 2002: 비엔나시 명예 메달
- 2012: 그라마폰 명예의 전당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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