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배우 디바 그라치엘라 스키우티

정준극 2008. 2. 27. 12:25

Graziella Sciutti (그라치엘라 스키우티)

뛰어난 미모의 배우 디바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그라치엘라 스키우티(1932-2001)는 1951년 액-생-프로방스에서 메노티의 ‘전화’(The Telephone)로 데뷔하여 현대작품에 대한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었지만 그후 모차르트의 역할과 18세기 작품에 전념하여 20세기에 이름을 떨쳤던 디바였다. 그라치엘라는 특히 모차르트에서는 체를리나(돈 조반니), 수잔나(피가로의 결혼), 데스피나(여자는 다 그래)에서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로시니와 도니체티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954년 글린드본 페스티발에서 보여준 로지나(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로시니가 의도하던 바로 그 수잔나라는 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음성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를 맡은 것은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 대표적인 역할이었다. 그는 노래하는 배우였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그는 향년 74세로 2001년 4월에 제네바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다.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난 그는(어떤 자료에는 1932년이 아니라 1927년으로 되어 있음) 원래 콘서트 소프라노로서 음악의 경력을 시작하였다. 부모는 모두 음악인이었다. 아버지는 오르가니스트였으며 어머니는 프랑스인으로 성악가였다. 그는 로마로 가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라켈레 마를리아노 모리(Rachele Margliano-Mori)에게 사사했다. 원래는 콘서트 성악가로서 활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라디오 방송에 연결되어 방송 오페라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첫 공개적인 출연은 1948년 '카이로의 거위'(L'oca del Cairo)였다. 그라치엘라의 첫 콘서트 데뷔는 1949년으로서 베니스에서 18세기 이탈리아 가곡을 부른 것이었다. 그러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첫 무대 데뷔는 1951년 액상 프로방스에서였다. '비밀결혼'(Il matrimonio segreto)에서 엘리세타와 '전화'(The Telephone)에서 여인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모두들 그라치엘라를 보고 콘서트보다는 오페라가 더 적격이라고 권면했다. 1954년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를 맡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후 런던(1956년 가면무도회의 오스카르), 잘츠부르크, 비엔나, 샌프란시스코의 무대를 통해 오페라 소프라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라치엘라 스키우티는 '피콜로 스칼라의 칼라스'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면서 모차르트의 수브레트 역할, 즉 수잔나, 데스피나의 해석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특히 1959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돈 조반니'에서 맡았던 체를리나는 가장 이상적인 역할이라는 평을 받았다. 1954년에는 소게(Sauguet)의 '마리안느의 변덕'(Les caprices de Marianne)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라치엘라 스키우티의 음성이 어떤 경우 얇다는 얘기를 하지만 발성적인 테크닉과 연기력이 그런 취약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 그 어느 누구도 그라치엘라만큼 순진한 역할,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있는 명랑한 역할을 그에 맞는 음성으로 감당할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교육가와 오페라연출가로 변신하였다. 1977년 글린드본에서의 ‘인간의 음성’(La voix humaine)에서는 출연도 하고 무대감독도 하여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었다. 첫 연출작품은 코벤트 가든에서 ‘사랑의 묘약’이었다. 이후 그는 캐나다오페라단, 샌프란시스코오페라단, 시카고 리릭오페라단,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등에서 연출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연출은 1985년 독일 코블렌츠 오페라극장의 재개관때 공연된 ‘마술피리’였다. 그는 1980년부터 세상을 떠날때까지 런던의 로열음악대학의 교수로 활동해다. 그는 세상을 떠날때까지 딸 수잔나의 간호를 받으며 지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난 프릿츠 분더리히와 무대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따듯한 친구사이였다.

 

테너 프릿츠 분더리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