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진실로 독일적인 Irmgard Seefried (이름가르트 제프리트)

정준극 2008. 2. 27. 14:00
 

▒ 진실로 독일적인 Irmgard Seefried (이름가르트 제프리트)


뛰어난 독일적 소프라노인 이름가르트 제프리트의 첫 음악 레슨은 11살 때에 그의 아버지로부터였다. 3년후, 이름가르트는 14세의 어린 나이로 오페라에 첫 출연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바바리아 지방의 민델하임(Mindelheim)이란 도시에서였다. 이름가르트는 민델하임 부근의 �게트리트(Köngetried)라는 마을에서 1919년 태어났다. 이름가르트가 민델하임 도시에서 출연한 오페라는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이었으며 그는 주인공인 그레텔을 맡았다. 그후 그는 성악에 대하여 더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아우그스부르크 음악원에 진학했다. 그가 정작 오페라에 첫 데뷔한 것은 1940년 그가 20세 때에 아헨(Aachen) 오페라극장에서 아이다의 여사제를 맡은 것이었다. 당시 지휘자는 허버트 폰 카라얀이었다. 카라얀은 이름가르트의 재능을 눈 여겨 보고 그를 아헨 오페라 전속단원으로 선발했다. 1943년 이름가르트는 대망의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진출했다. 거장 칼 뵘(Karl Böhm)이 지휘하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에바(Eva)를 맡은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년후 인 1953년, 이름가르트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2년 동안 머물면서 여러편의 오페라에 출연한하여 팬들을 열광케 하였다. 같은해에 그는 메트로의 초청으로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를 맡아 갈채를 받았으며 메트로의 간청에 따라 뉴욕에 1년을 머물면서 1953-54년도 시즌에 다섯편의 오페라에 출연하여 실력을 과시하였다.

 


이름가르트는 아주 특이한 음성을 지니고 있으며 완전히 자연발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오랜 친구인 슈바르츠코프는 ‘누구든지 이름가르트의 자연발성을 무척 부러워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하고 ‘어떻게 그렇게 소리를 아주 쉽게 그리고 편하게 낼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따듯한 음조와 사람을 끄는 부드러운 성격은 수잔나, 휘오르딜리지, 에바, 클레오파트라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요소였다. 그는 가곡에 있어서도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특히 세계대전 이후 감추어져 있던 거장들의 작품을 발굴하려는 노력에 적극적이어서 모차르트의 ‘오랑캐꽃’(Das Veilchen)을 찾아 노래로 세상에 알린 것은 큰 업적이다. 이름가르트는 연주회가 있을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심일 운동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이름가르트 제프리트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해인 1988년 비엔나에서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나라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