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라스 이전의 최고 디바 Margherita Carosio (마르게리타 카로시오)
이탈리아의 마르게리타 카로시오는 14세 때에 처음으로 오페라에 출연한 이래 60대 초까지 거의 60년 동안을 오페라 주역으로 활동했던 대단한 소프라노였다. 1908년 제노아에서 태어난 카로시오는 2005년 1월, 향년 97세로 고향인 제노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로시오는 마리아 칼라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벨칸토 소프라노로서 라 스칼라의 대표적인 디바였다. 카로시오의 아버지인 나탈레 카로시오(Natale Carosio)는 제노아에서 이름난 성악교사 겸 작곡가였다. 따라서 카르시오는 어릴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집중적인 음악레슨을 받았다. 카로시오를 14세 때에 오페라 무대에 서게 한 것도 아버지였다. 나중에 카로시오는 아버지를 추억하여서 ‘나는 단지 양털에 불과하며 아버지는 훌륭한 양털 짜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카르시오가 16세 때에 비록 노비 리구레(Novi Ligure)에서 ‘람메무어의 루치아’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그의 재능을 주목해 본 아일랜드의 소프라노 마가레트 셰리단(Margaret Sheridan)이 그를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 소개하였다. 카르시오는 코벤트 가든에서 당대의 베이스 샬리아핀의 상대역으로 보리스 고두노프에 출연하여 갈채를 받았다.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카르시오는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불렀고 샬리아핀은 러시아어로 노래를 불렀으며 합창단은 프랑스어였다. 카르시오는 이때의 공연에 대하여 ‘샬리아핀으로부터 단순히 노래부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할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카르시오는 2차대전 때문에 런던을 다시 방문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나고서야 방문하였다. 카르시오는 2차 대전중 주로 나폴리에서 활동하였다. 1946년 나폴리의 산 카를로 오페라단과 함께 런던을 방문한 카르시오는 비올레타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더구나 전쟁중 나폴리에서 카르시오의 모습을 보았던 영국군 장병들은 카르시오의 비올레타에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아담한 체구에 사랑스러운 모습의 매력적인 카르시오는 그야말로 우상이었다. 런던에서 카르시오는 비올레타 이외에도 아디나(사랑의 묘약)로서 발랄한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아디나는 카르시오가 라 스칼라에서도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던 역할이었다.
아무튼 1928년 코멘트 가든에서의 대성공 이후 카르시오의 이름은 전 이탈리아에 알려지게 되었고 오페라극장들은 이 젊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서로 초청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그 결과 카르시오는 아미나(몽유병자), 노리나(돈 파스쿠알레), 콘스탄체(후궁에서의 도피), 오스카(가면무도회), 미뇽 등을 맡아 대활약을 하였다. 가면무도회에서의 오스카는 라 스칼라 데뷔 역할이기도 했다. 카르시오가 등장한 모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한편, 카르시오는 다른 역할에도 모험을 보였다. 그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황금 닭’에서 셰마칸 여왕,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에서 타이틀 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조용한 여인’(The Silent Woman: 이탈리아 초연)에서 아민타(Aminta), 마스카니의 네로네에서 에글로네(Eglone: 1935년 수정본 초연) 등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1954년 그는 메노티의 ‘아멜리아 무도회에 가다’(Amelia al Ballo)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드라마틱 콜로라투라보다는 리릭으로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카르시오는 중년 이후 보다 리릭한 역할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미(라 보엠), 비올레타(라 트라비아타) 등이었다. 그의 순수한 음성,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능력은 이들 미미와 비올레타에 최적이었다.
카르시오는 한때 몇편의 이탈리아 영화에 출연했었다. 그후 할리우드의 MGM으로부터도 영화출연 교섭을 받았으나 이탈리아에서의 약속 때문에 수락하지 못했다. 1949년, 그는 베니스에서 청교도에 출연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몸이 아파서 출연할수 없게 되었다. 마침 같은 극장에서 칼라스가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맡아 공연중이었다. 칼라스가 발퀴레의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뒤에서 별뜻없이 청교도의 아리아를 흥얼거리며 연습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마침 지휘자 세라핀(Serafin)의 부인이 보고 남편에게 칼라스를 소개하였다. 사실 칼라스는 청교도의 스코어를 모두 익혀놓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하여 칼라스는 다음날 저녁 벼락과 같이 청교도의 엘비라를 맡게 되었고 놀라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부터 카르시오의 시대는 지나고 칼라스의 시대가 오게 되었다. 당시 베니스의 오페라극장들은 매일 각기 다른 낮 공연과 밤 공연을 가졌으며 하나의 작품을 거의 이틀에 한번씩 공연하였다. 그러한 때에 칼라스는 낮 공연에서 발퀴레에 출연하고 있었으며 카르시오는 다음날 밤 공연에서의 청교도에 출연키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르시오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또한 패션에도 남다른 취향을 보였다. 그는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이탈리아 최고 디자이너의 의상을 화려하게 입고 나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의 음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음성을 어떻게 배치해야 최고의 효과를 볼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카르시오는 타고난 성악가였다. 그러한 천부적인 소질이 뛰어난 테크닉과 연합하여 찬란한 재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재능은 루치아를 들어보면 알수있다. 숨막히는 것이었다. 그의 아디나는 위트에 넘쳐있고 우아한 것이었으며 비올레타는 비극적인 예견이 함축된 것이었다.
로지나(세빌리아의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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