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놀라운 재능 Martha Mödl (마르타 뫼들)

정준극 2008. 2. 27. 15:51
 

▒ 놀라운 재능 Martha Mödl (마르타 뫼들)


장수(Longevity)라는 단어는 마르타 뫼들을 염두에 둔 단어인것 같다. 독일의 뫼들은 1942년부터 무대 활동을 시작하여 80세가 지나서까지 당당하게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같은 일은 극히 예외적이어서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뉘른베르크음악원을 나온 뫼들의 첫 오페라 데뷔는 메조 역할인 훔퍼딩크의 헨젤이었다. 뫼들은 첫 오페라 데뷔를 1942년에 하였으므로 거의 반세기라는 긴 세월을 계속 활동한 유일한 성악가였다.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28세까지 경리사원과 비서를 했다. 그러나 음악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 직장을 과감히 버리고 늦은 나이에 뉘른베르크음악원에 들어갔다. 2차대전이 끝난후인 1945년부터 49년까지 뫼들은 뒤셀도르프에서 역시 전통적인 메조 역할인 도라벨라, 옥타비안, 작곡가, 클리템네스트가, 카르멘 등 을 맡으며 경력을 다져왔다. 그러나 1949년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 전속되면서부터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방향을 바꾸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함부르크에서 주로 맡은 역할은 레이디 맥베스(맥베스), 레오노라(휘델리오), 쿤드리, 비너스, 이졸데, 브륀힐데 등 바그너의 주인공들이었다. 후에 그는 바그너의 메조 역할인 발트라우테와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부인’에서 간호사 역할을 추가하였다. 이렇듯 그는 메조와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폭넓은 음역으로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1951년, 2차 대전후 처음으로 바이로이트가 문을 열었을 때 뫼들은 쿤드리를 맡아 기쁨을 던져 주었으며 이후 1967년까지 바이로이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브륀힐데와 이졸데의 대명사가 되었다. 뫼들은 런던, 비엔나, 뉴욕, 뮌헨, 베를린 등 세계의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을 하였다. 그는 생애의 후반기에 다시 메조 역할로 돌아왔다. 차이코브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노백작부인 맡은 것은 대표적인 예였다. 뫼들은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에서 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그 중에서 1952년과 1953년 푸르트뱅글러 지휘의 바이로이트에서 브륀힐데와 이졸데를 맡아 레코딩한 것은 전설적인 걸작으로 남아있다. 뫼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오랜 연륜의 연주회와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은 영화로 기록되어 남아있다. 1992년, 뫼들이 87세의 고령일때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스페이드의 여왕’에 백작부인으로 출연하였던 것은 영화로 촬영되어 최근 벨칸토협회가 비디오로 만들어 출시하였다. 이 공연에는 미렐라 프레니, 베셀리나 카사로바(Vesselina Kasarova)가 함께 출연하였고 지휘는 오자와 세이지가 맡았었다.


1966년, 영화음악의 거장  베르너 슈뢰터(Werner Schröter)가 ‘사랑의 잔해’(Love's Debris)라는 영화를 만든 일이 있다.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자기의 음성에서 어떻게 감정을 발견하는지를 탐구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3명의 디바, 즉 리타 고르(Rita Gorr), 아니타 체르케티(Anita Cerquetti), 그리고 마르타 뫼들이 출연하였다. 당시 뫼들은 85세였다. 영화에서 뫼들은 아리아와 리트를 부르고 여배우 아시벨르 후페르트(Isabelle Huppert)와 인터뷰하였다. 대단한 노익장이었다. 뫼들은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여 그렇듯 신비스러운 예술활동을 할수 있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나도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모릅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하였다. 뫼들는 89세때인 2001년 12월 16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에볼리(돈 카를로)                                     쿤드리(파르지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