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찬사 Suzanne Danko (수잔느 단코)
1940년대에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수잔느 단코(얼굴에 붙어 있는 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는 벨기에의 자랑이었다. 1911년 브뤼셀의 플레미쉬 가정에서 태어난 수잔느 단코는 어릴때부터 성악에 관심을 두어 공부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주춤했다가 마침 벨기의 여왕이 후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브뤼셀음악원에 들어갈수 있었다. 1936년, 25때에 비엔나성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당대의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의 추천으로 프라하의 명교사 훼르난도 카르피(Fernando Carpi)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개인 레슨을 마친 그는 이탈리아로 가서 처음에는 콘서트 아티스트로서 데뷔하였으며 오페라 데뷔는 1941년 제노아에서 휘오르딜리지(Fiordiligi)로였다. 제노아 공연은 대성공이어서 휘오르딜리지는 수잔느 단코의 초창기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단코는 자기의 명함에 휘오르딜리지 수잔느 단코라고 적고 다녔으며 극장들도 단코를 소개하는 포스터나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세계적 휘오르딜리지, 또는 브뤼셀에서 온 휘오르딜리지라는 설명을 붙였다. 전쟁이 끝난후인 1947년, 단코는 복구된 라 스칼라의 초청을 받아 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의 이탈리아 초연에서 엘렌 오르포드(Ellen Orford)를 맡아 찬사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외디푸스 렉스(edipus Rex)에서 요카스타(Jocasta)를 맡았다. 이어서 그는 보체크의 나폴리 초연(산 카를로)에서 마리(Marie)를 맡아 현대음악에 대한 충실한 해석을 하였다. 어떤 사람이 단코에게 어떻게 하여 모차르트에서 베르크로 방향을 바꿀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노래라면 어떤 것이든지 모두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
단코의 첫 영국 무대는 1951년 글린드본에서 돈나 엘비라로였다. 돈나 엘비라는 단코의 성악가로서의 재능과 극장배우로서의 재능에 가장 적합한 역할이었다. 단코는 그해에 코벤트 가든에서 미미로 무대를 장식하였다. 단코의 미미는 대단한 성공이었으나 오페라 잡지는 별로 대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단코는 다시는 코벤트 가든에 서지 않았다. 미국 데뷔는 1950년 돈나 엘비라로였다. 그는 프랑스의 액-생-프로방스에서도 돈나 엘비라를 맡았으며 이 공연은 음반으로 나온바 있다. 단코가 찬사를 받은 이유는 음악적인 이해가 폭넓었다는 점도 있지만 오페라에서나 콘서트에서나 어떤 연주회라도 정성을 다하여 세련된 연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코는 모차르트의 가벼운 역할과 드빗시의 멜리상드 역할에서 뛰어났다. 지휘자 어네스트 안세르메(Ernest Ansermet)는 단코가 프랑스 작품을 가장 이상적으로 해석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리하여 안세르메의 지휘로 드빗시의 멜리상드와 라벨의 단막 오페라 두편등을 취입하였다. 에리히 클라이버는 단코의 상표가 케루비노라고 주장하였다. 명랑하고 재치있고 감성적인 케루비노를 당시 소프라노로서는 가장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콘서트에서는 프랑스 가곡에서 심오한 해석을 하였다. 특히 베를리오즈, 드빗시, 라벨의 작품에서 그러했다. 단코의 노래는 간혹 너무 차갑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피가 끓는듯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에 보다 더 익숙해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부터는 오페라 무대가 힘들기 시작했다. 단코는 콘서트에 보다 많은 정성을 들였다. 1970년에 말러의 교향곡 제4번에서 솔리스트로 연주한 것은 백조의 노래와 같은 것이었다. 그후 단코는 은퇴하여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아카데미아 치지아나(Academia Chigiana)의 단코를 찾아오는 미래의 성악가들은 줄을 설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 서포크(Sufforlk)의 앨드버러(Aldeburgh)에 있는 브리튼-피어스 음악학교를 자주 찾아가서 역시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하였다. 스위스 출신의 테너 위그케노(Hugues Cuénod)와 함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학생들을 성심껏 가르쳤다. 그는 플로렌스 부근의 휘에솔레(Fiesole)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단코는 이 별장의 이름을 아마릴리(Amarilli)라고 붙였다. 카치니(Caccini)의 가곡 아마릴리에서 따온 것이다. 단코의 콘서트나 리사이틀에서는 아마릴리가 18번으로 등장해 왔다. 수잔느 단코는 2000년 8월 10일 휘에솔레의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1년만 더 살았더라면 90세가 되었을 터인데 라는 별로 의미 없는 아쉬움이 있다.
'여자는 다 그래'에서 표르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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