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봄의 향기 Yvonne Printemps (이본느 프랭땅)

정준극 2008. 2. 28. 08:53
 

▒ 봄의 향기 Yvonne Printemps (이본느 프랭땅)


1894년 파리 근교의 에르몽에서 태어난 이본느 프랭땅 (원래 이름은 이본느 위그니오예: Yvonne Wigniolle)은 13세 때 극장의 무용수로 고용되었다. 원래 성격이 명랑하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프랭땅(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프랭땅은 28세때 이미 파리 연예계의 스타로 군림할 정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명배우 모리스 슈발리에와 함께 공연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리고 그때에 만난 사람이 마담 파라비치니였다. 훌륭한 오페레타 아티스트였던 마담 파라비치니는 프랭땅에게 아름답고 재능있는 목소리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경고해 주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프랭땅은 마담 파라비치니로부터 레슨을 받아 그 이후로 반세기 동안 새로운 음성으로 세계 오페라 무대를 압도하였다. 1919년 (삼일 운동이 일어난 해), 프랭땅은 유명한 배우 겸 극작가인 사샤 귀트리(Sacha Guitry)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당대의 명배우 사라 베른하르트가 이들의 결혼의 증인으로 참석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었다. 남편 귀트리는 여러 편의 연극 작품을 썼다. 그리고 배우이기도 한 귀트리가 자기의 연극에 부인 프랭땅과 함께 공연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의 결혼은 14년만에 깨졌고 귀트리는 그후 3번 더 결혼했다. 

 

 


1926년 아직 귀트리와 헤어지기 전, 프랭땅은 런던에서 귀트리가 쓴 ‘모차르트’라는 타이틀의 연극을 함께 공연한 일이있다. 이때 프랭땅은 반바지를 입고 젊은 시절의 모차르트 역할을 했다. 젊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무대위의 높은 곳에서 사다리를 걸어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천사가 하늘에서 걸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관객들은 그 모습에 너무나 압도되었고 더러는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프랭땅은 무대에 등장하는 것 그 자체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프랭땅과 귀트리는 연극 ‘모차르트’를 가지고 뉴욕, 보스톤, 몬트리얼을 강타하였다. 프랭땅은 미국의 환영에 고무되어 눌러 살기로 했다. 프랭땅은 영화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영화에서는 자그마한 인물들이카메라에 잘 잡히지만 프랭땅은 체격이 큰 글래머였고 나이도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놀랄만큼 매력적이었고 위트가 있었으며 멋쟁이였다. 실제로 프랭땅은 옷을 입는데 많은 정성을 들였다. 프랭땅은 타고난 연기자였으며 눈부신 웃음,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음성...그가 출연한 오페라를 본 사람이면 그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빠져 다시 찾아오게 된다. 프랭땅을 디바로서 부상시켜준 작품은 아드리아 르쿠브로였다. 그러나 실제로 위대한 성공은 ‘세개의 왈츠’(1938)와 ‘파리의 왈츠’(1948)였다. 이들 오페라에서 프랭땅은 우아한 왈츠를 추어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개를 좋아한 이본느 프랭땅 

 

프랭땅은 어느 면으로 보나 인기를 먹고 사는 디바였다. 커다란 모자, 눈부신 보석, 두 마리의 조그만 개 등등이 돋보이는 디바였다.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프랭땅은 성격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며 생각이 짧고, 질투심, 그리고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전혀 무관심하였다고 한다. 그는 달콤한 로맨스, 나쁘게 말하면 결혼한 몸으로서 분별없는 스캔들이 많았다. 마치 부두에 정박하면 내려와서 하루밤 막사랑을 하는 뱃사람과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프랭땅은 음주벽이 있었다. 특히 말년에 그러했다. 전설적인 디바 프랭땅은 1977년 1월 19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미도 사랑한 이본느 프랭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