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진정한 드라마틱 메조 Dolora Zajik (돌로라 차지크)

정준극 2008. 2. 28. 09:26
 

▒ 진정한 드라마틱 메조 Dolora Zajik (돌로라 차지크)


차이코브스키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던 러시아 출신의 돌로라 차지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이다. 그의 음성은 웅대하고 윤택하며 풍부하다. 그는 음성은 가장 깊은 흉성에서부터 고음의 B 내츄럴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균형 잡혀있다. 어떤 경우, 고음에서 소리가 퍼지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수 있지만 그건 정말로 하찮은 사항이다. 일단 그의 음성을 한번이라도 들은 사람들은 ‘아, 이것이 진짜 메조소프라노구나!’라면서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그의 음성은 경이롭다. 델릴라(삼손과 델릴라)에서는 대단히 풍부하고 윤택하며 여성적인 부드러움으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다. 유명한 아리아 ‘그대 음성에...’의 마지막 소절에 ‘Je t'aime!'이라고 절규하듯 노래 부르는 파트가 있다. 차지크는 이 소절을 다른 어느 누구도 시도하기 어려운 B플랫으로 마무리하였다. 아주체나(일 트로바토레), 또는 에볼리(돈 카를로)에서는 넘치는 힘과 열정적인 감정을 폭발이라도 하듯 내뿜었다. 그리고 암네리스(아이다)에서는 마치 땅속에서 용암이 솟구쳐 나오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베르디의 막베스에서 레이디 막베스를 맡은 일이 있다. 레이디 막베스가 몽유병자처럼 잠이 든채 걸으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있다. 차지크는 하이 D플랫의 고음을 부드럽게 마무리하였다. 메조소프라노는 물론이고 어떤 소프라노도 하기 어려운 기교였다. 평론가들은 베르디가 의도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차지크는 메조이면서 콜로라투라의 아리아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부를수 있는 희귀한 존재이다. 로시니의 세미라미데에서 아라바체(Arabace)를 맡은 것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과연 그가 콜로라투라인지, 일반적인 드라마틱 소프라노인지, 콘트랄토에 가까운 저음도 어려움없이 소화하는 메조소프라노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아직까지도 메조라고하면 모차르트, 로시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벨칸토 작품에 집중하는 리릭을 말하는 것이 통상이다. 차지크는 이들과는 다르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메조라고 할수 있다. 에볼리, 카르멘, 델릴라는 케루비노, 옥타비안과 같은 ‘바지 역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정열적이며 배짱이 있는 메조이다. 이런 ‘대단한’ 메조로는 에베 스타냐니(Ebe Stignani), 줄리에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 훼도라 바르비에리(Fedora Barbier)를 들수 있다. 다만, 차지크가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경쟁자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혜성과 같이 나타난 키로프의 올가 보로디나(Olga Borodina)는 차지크와 쌍벽을 이루는 메조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리나 미슈라(Irina Mishura), 또는 스테파니 블라이스(Stephanie Blythe)도 경쟁상대일수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차지크가 베르디와 베리스모 작품 속의 드라마틱 역할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메조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정확한 딕션(가사 발음)은 차지크의 또하나 장점이다.  죽어야하는 운명에 도전이라도 하는 듯한 깊이 있는 흉성, 머리를 산발한채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무서운 감정,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폭발시키려는 듯한 고음은 오페라 하우스를 흔들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경쟁상대가 있다고 해도 차지크의 드라마틱한 표현은 따를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