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영광의 디바 Ebe Stignani (에베 스티냐니)

정준극 2008. 2. 28. 11:34
 

▒ 영광의 디바 Ebe Stignani (에베 스티냐니)


이탈리아의 에베 스티냐니는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는 격동의 시기에 가장 위대한 메조소프라노로서 영광과 환희를 함께 누렸던 위대한 오페라 아티스트였다. 그는 당대에서 가장 풍성한 음성과 폭넓은 음역을 지녔으며 뛰어난 재능(성악적 테크닉)과 함께 가장 열정적이고 생동적으로 무대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그는 감정의 콘트롤과 표현에서 뛰어났으며 영광스럽고 드라마틱한 음성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마치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것이 하나님이 내려준 사명이라고 믿는 듯 헌신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였다. 에베 스티냐니는 길이 기억될 역사적 디바이다. 1903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스티냐니는 ‘산 피에트로 음악원’에서 피아노, 성악, 작곡을 공부했다. 졸업하자마자 그는 나폴리의 유명한 산 카를로극장에 스카웃되었다. 이곳에서의 첫 데뷔는 1925년 암네리스(아이다)로였다. 이듬해인 1926년, 스티냐니가 겨우 23세때에 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완성하여 새로운 경력을 개척하였다. 일 트로바토레의 아주체나였다.

 


거장 토스카니니가 스티냐니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그를 밀라노의 라 스칼라로 초청하였다. 그로부터 스티냐니는 세계 최고의 라 스칼라에서 가장 주도적인 메조와 콘트랄토로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그는 프랑스 작품에도 재능을 보여주었다. 카르멘, 델릴라, 미뇽등이었다. 독일 작품에 있어서는 오르트루트(로엔그린)를 비롯한 바그너 오페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27년 스티냐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에서 아주체나로 데뷔하여 남미를 열광시켰다. 그로부터 10년후인 1937년에는 코벤트 가든에서 암네리스를 맡아 기록적인 박수를 받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파손된 라 스칼라가 재건되어 다시 오프닝되었을 때 스티냐니는 델릴라를 불렀다. 1947년 1월 29일이었다. 스티냐니는 정말로 거대한, 어찌보면 히스테리컬하기까지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평론가들은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언제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결코 오케스트라에 반하여 노래를 부른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해 말, 마드리드에서 오르페오를 불렀을 때 스페인의 관중들은 가장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래서 스티냐니는 Che faro를 무대 앞에 나와 다시 불러야 했다. 그의 노래는 ‘최상’이라는 단어로서도 표현이 부족하였다. 그는 고전적인 작품으로서 별로 자주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의 부흥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세미라미스(Semiramis), 샤무니의 린다, 라 화보리타 등이었다. 스티냐니는 무려 1백개 이상의 역할을 맡아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고 무대 활동은 무려 30년에 걸쳤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1957년 플로렌스에서 울리카(가면무도회)로였다.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모임은 거의 한달 동안 열렸다. 그는 1974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에베 스티냐니가 남긴 음반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리아는 에볼리(돈 카를로)의 아리아 O don fatale와 린다(샤무니의 린다)의 아리아 Per sua madre andrò una figlia 등이다. ‘친구 프리츠’증에서 Lceri, miseri, tanti bambini도 더할수 없이 뛰어나다. 그리고 델릴라의 두 아리아도 찬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뚜짜 

  

 암네리스(아이다)

 오르페오

산뚜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