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정상의 리릭 메조 Else Brems (엘제 브렘스)

정준극 2008. 2. 28. 11:37
 

▒ 정상의 리릭 메조 Else Brems (엘제 브렘스)


덴마크의 메조소프라노 엘제 브렘스는 2차대전중인 1943년 나치 점령하의 코펜하겐에서 공연된 거슈인의 ‘포기와 베쓰’에서 백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베쓰를 맡았다. 그는 특유의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리릭 메조였다. 그는 음악과 언어에 전적으로 헌신한 아티스트였다. 그런 점에서는 캐틀린 훼리어나 알렉산더 키프니스와 견줄만하다. 엘제 브렘스는 1908년 코펜하겐의 음악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올갠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삼촌은 혼 주자였다.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아버지는 원래 클라리넷 주자였으나 타고난 미성으로 로망스가수로 활동하였다. 아버지는 또한 훌륭한 음악교사였다. 딸 엘제는 아버지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엘제가 17세 때에 아버지는 당대의 바리톤 마티아 바티스티니(Mattia Battistini)에게 데려갔다. 그는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인 엘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다. 얼마후 엘제는 프랑스 레퍼토리를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다. 이로부터 엘제 브렘스와 프랑스 음악과의 평생에 걸친 러브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브렘스의 첫 본격적인 오페라 데뷔는 그가 21세때에 로열 코펜하겐극장에서 카르멘으로였다. 이후 그는 비엔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스톡홀름, 런던(영어)에서 카르멘의 모습을 보여 찬사를 받았다. 그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성은 메짜 보체(mezza voce)였으며 그의 포르타멘토는 특별히 훌륭했다.

 

 

브렘스는 코펜하겐 오페라에서 1930년부터 1962년까지 무려 30년 이상을 디바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는중 1933년 그는 미국 순회연주를 떠났다. 시카고에서의 콘서트는 대성공이었고 그의 음성은 당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젊은 어네스틴 슈만-하인크와 비교되었다. 그는 몇 년동안 미국에서 머물면서 베냐미노 질리에게서 보다 심도있는 성악지도를 받았다. 1938년 그는 비엔나에서 카르멘을 맡아하였다. 브루노 발터의 지휘였다. 상대역은 유명한 얀 키에푸라였다. 1940년 그는 테너 슈테판 이슬란디(Stefan Islandi)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여러번 함께 콘서트 연주를 하였다. 전쟁중 그는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을 방문하여 공연했고 전쟁이 끝나자 코벤트 가든에서 카르멘으로 인기를 차지했다. 그는 1967년부터 1978년까지 뛰어난 성악교사로서 활동했다. 엘리자베트 마이어(Elisabeth Meyer-Topsoe)는 그의 제자중 하나였다.

 

 

오르페오                                                                  '포기와 베쓰'에서 베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