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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음성 Giovanni Consiglio (조반니 콘실리오)

정준극 2008. 3. 1. 23:10

▒ 찬란한 음성 Giovanni Consiglio (조반니 콘실리오)

 

카니오 역의 조반니 콘실리오


테너 조반니 콘실리오의 노래는 누구든지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의 음색은 찬란하며 그의 음성은 중음의 확고한 뒷받침을 받아 영광스럽게 빛났다. 고음에 있어서 그는 하이 B와 하이 C를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쉽게 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제2의 베냐미노 질리, 또는 제2의 로리 볼피(Lauri-Volpi)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의 포지아(Foggia)지방에서 태어난 콘실리오는 고향에서 개인 교습을 받으며 성악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세도 되지 않은 청소년 시절에 군에 입대하여 아프리카에서 복무하였다. 그는 알 알라멩(Al Alamain) 전투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 참여하였고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2년간 이집트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그때서야 나폴리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성악공부를 하였다.


1949년 거장 지휘자 프랑코 파타네(Franco Patané)가 콘실리오의 재능을 인정하여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로 선발하였다. 나폴리에서 성공을 거둔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가 그곳 라디오 방송국과 1년간 계약을 맺고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다. 방송에서 두각을 나타낸 콘실리오는 곧 이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과 계약을 맺어 알프레도(라 트라비아타), 에드가르도(람메무어의 루치아), 카바라도씨(토스카) 등에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5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계속 공연을 하는 한편, 유명한 라 스칼라의 테너 프란체스코 메를리(Francesco Merli)에게서 직접 지도를 받았다. 1958년 콘실리오는 여객선을 타고 미국으로 향하였다. 뉴욕에 도착한지 1주일만에 그는 트리보로 스타디움(Triboro Stadium)에서 라다메스(아이다)를 공연하여 갈채를 받았다. 이어 그는 프로비던스, 뉴올리언스, 달라스 등지에서 라 보엠, 카르멘, 아이다, 리골레토, 팔리아치 등을 공연하여 명성을 얻었다. 얼마후 그는 남미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컬럼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에서 토스카와 나비부인을 공연하였다.

 

 팔리아치

 

그는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20여년 동안 마그다 올리베로, 레일라 겐서, 리치아 알바네스, 진카 밀라노프, 가브리엘라 투치, 아일린 화렐, 셰릴 민스와 같은 유명 소프라노의 상대역으로 공연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역할은 팔리아치에서 카니오였다. 카니오만 300회 이상 맡아하였다. 그는 현재 맨해튼에 있는 개인 슈트디오에서 후진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콘실리오가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념비적인 노래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의 겸손한 무대 맨너와 소박한 생활 태도가 더 매력을 주었는지 모른다.

 

근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