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최고의 알프레도 Leonid Sobnov (레오니드 소비노브)

정준극 2008. 3. 2. 17:12
 

▒ 최고의 알프레도 Leonid Sobinov (레오니드 소비노프)


‘소비노프 이전의 어떠한 알프레도도 그의 사랑이 자기 자신에게 비극이었음을 알게 해준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라 트라비아타가 비올레타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소비노프는 라 트라비아타의 비극이 비올레타에게 뿐만 아니라 알프레도에게도 비극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인물이다.’ -  라 트라비아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그만큼 러시아의 레오니드 소비노브는 훌륭한 테너였다. 그는 1872년 모스크바 동북방 170마일에 있는 야로슬라블(Jaroslavl)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밀가루 도매상이었다. 어린 소비노브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서 기타연주를 잘 했고 합창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대생이 되기를 원했다. 소비노브는 모스크바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군대의 법무관으로 입대하였다. 당시에는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정열은 버릴수가 없었다. 소비노프는 제대하자마자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소비노프는 성악에 소질이 없다고 인정받으면 법률가로서의 직업을 가질 생각이었다. 레슨 선생이 아이디어를 냈다. 볼쇼이극장의 오디션에 참가하여 합격하면 아예 성악가로 진로를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소비노프는 볼쇼이의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고 2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이로서 그는 테너로서의 전도를 확정하였다. 소비노브는 뛰어난 호흡법, 브드럽고 안정된 메짜-보체, 그리고 정확한 딕션으로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루스란과 루드밀라’, 파우스트, 마농, 이고르 공, 유진 오네긴, 할카(Halka), 리골레토, 탄호이저, 그리고 이바노프의 자바바 푸티야티슈나(Zabava Putyatishna)에 출연하였다. 소비노프는 샬리아핀(Chaliapin)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세계 최고의 위대한 베이스가 된 샬리아핀은 소비노프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함께 공연할 기회가 많았다. 당시 볼쇼이는 테너 니콜라이 휘그너(Nikolai Figner)가 지배하고 있었다. 소비노프는 휘그너의 라이벌일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테너 제왕의 자리에서 양보해야할 입장이었다. 소비노프는 모든 면에서 휘그너에 뒤지지 않았으나 보다 실력을 쌓기 위해 이탈리아행을 결심하였다.


1903년부터 그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안토니나 네츠다노바(Antonio Nezhdanova)의 상대역으로 ‘진주잡이’에서 나디르(Nadir)를 맡아 호평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듬해에는 라 스칼라에서 에르네스토(Ernesto)를 맡아 대단한 격찬을 받았다. 이어 그는 마농과 프라 디아볼로에도 출연하였다. 로엔그린과 베르테르는 다음번 레퍼토리였다. 그는 마드리드와 베를린에서도 공연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러시아에서는 볼쇼이에서 로엔그린에 출연하여 극찬을 받았다. 특히 생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로엔그린은 전설적인 테너 이반 에르쇼프(Ivan Esshov)의 재현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1912년 그는 라 스칼라에서 루크레지아 보리(Lucrezia Bori)의 상대력으로 로메오를 맡았고 1914년 세계1차대전이 터지기 몇 달전에는 카바라도씨를 맡아 당대 최고의 테너로서 각광을 받았다. 전쟁중 그는 다시 러시아군에 입대하여 부상병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았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혁명이 터지자 그에게는 예술계의 주요 직위가 주어졌다. 샬리아핀, 쿠즈네쪼바, 라흐마니노프, 다비도프 등과는 달리 그는 계속 주요직을 맡으며 지내다. 레드 아미(적군)가 정권을 잡았을때에도 그는 러시아 문화행정의 주요직을 맡았다. 1921년 그는 볼쇼이극장의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몇 달후 그 직위를 사임하고 평범한 테너가 되어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하는 것으로 말년을 보냈다. 그는 193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제정러시아로부터는 성악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왕실가수칭호를 받았고 혁명후에는 소련최고인민예술가 훈장, 적군장교훈장, 붉은노동기장을 받았다. 그가 태어난 야로슬라블에는 ‘레오니드 소비노프기념관’이 세워져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다.

 

'눈의 아가씨'에서 차르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