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금세기 최고의 테너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정준극 2008. 3. 2. 17:15
 

▒ 금세기 최고의 테너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 시대의 세계 최고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역시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인 미렐라 프레니와 같은 해(1935년)에 같은 지역(모데나)에서 태어났다. 파바로티의 아버지는 재능 있는 아마추어 성악가로서 원래는 무솔리니의 군대에서 빵을 굽던 사람이었다. 그건 그렇고 파바로티는 1961년 레지오 에밀리아의 오페라 극장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로서 처음으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너무나 훌륭한 로돌포였으므로 그후로부터 그의 대명사는 로돌포가 되었다. 파비로티의 미국 데뷔는 1965년 마이아미에서 조앤 서더랜드와 함께 ‘람메무어의 루치아’에 출연한 것이었다. 파바로티가 세계적인 태너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1972년 메트로에서 ‘연대의 딸’(도니제티)에서 주역을 맡은 것이었다. ‘연대의 딸’의 테너주인공은 모든 오페라 중에서 가장 고난도의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연에서 그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하이 C를 아홉 번이나 끌어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날 밤 그는 17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1977년부터 메트로는 상당수 오페라 공연 실황을 TV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파바로티는 언제나 TV 오페라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나오는 오페라 실황 중계는 언제나 시청률 1위였다. 그는 수많은 레코딩을 하였고 그 결과 그래미상을 여러번 받았다. 1990년대에 파바로티는 야외 공연으로 더할수 없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TV로 중계된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의 야외 연주는 우선 하이드 파크 역사상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회를 가진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가장 많은 청중이 몰려든 것이었다. 무려 15만명이 하이드 파크를 메웠다. 1993년 뉴욕 센트랄 파크에서의 야외 연주회에는 기록적인 50만명의 관중이 몰려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연주회는 전세계에 생중계되어 그야말로 수천만명이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였다. 같은해 그는 파리의 에펠탑 아래의 광장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약 30만명이 운집하였다.


야외 연주회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른바 Three Tenors라고 하는 파바로티, 카레라스, 그리고 한때는 그의 라이발이었던 도밍고와의 연주회이다. 첫 번째 ‘스리 테너스’ 연주회의 레코드와 비디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롤링 스톤스를 능가하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최근 그는 그의 스태프 중 한사람과 결혼하였다. 부인은 쌍둥이를 낳았으나 그중 앨리스만이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그의 전처와 세 딸에 대하여 굳이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처에서 태어난 세딸 들은 파바로티가 자선 연주회를 통해 모금한 돈을 교묘하게 빼어내서 개인적으로 유용하였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파바로티는 세상을 떠난 다이아나 전 영국황태자비와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다이아나와 파바로티는 세계 전쟁지역에 남아있는 지뢰제거를 위한 자선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파바로티는 다이아나의 장례식에서 조가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비통한 마음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대신 엘튼 존이 맡게 된 것은 다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파바로티는 2004년 69세일때 연주 생활을 마감하는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파바로티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만 소개하자면 그는 음악회 역사상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1988년 2월 24일, 베를린의 도이치오퍼에서 네모리노(사랑의 묘약)를 공연했을 때였다. 무려 167번의 커튼콜을 받아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해야 했다. 박수시간은 무려 1시간 7분이었다. 아직까지 167회의 커튼콜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 플라치도 도밍고는 101회에 그쳤을 뿐이었다. 1991년 7월 30일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오텔로를 공연하고 나서였다. 파바로티의 체중에 대하여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행할 때에는 비행기의 넉넉한 좌석을 이용하므로 걱정이 없다. 다만, 이탈리아 사람답게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인데 그렇다고 다이어트하여 날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마 팬들이 모두 외면할지도 모른다. 파바로티는 2007년 9월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4살짜리 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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