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카스트라티
만일 우리가 17세기나 18세기 초에 살고 있다고 치고 어느 날 저녁에 이탈리아의 어떤 오페라극장을 갔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몇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 역할도 했고 남성 역할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의 오페라 출연을 허용하지 않았다. 교황청에서 그런 칙령을 내렸다. 순진하다고 알려진 인노센트12세(Innocent XII)라는 교황이 그런 칙령을 내렸다. 여성은 합창단원으로서도 참가할 수 없었다. 비단 오페라뿐만 아니라 연극과 같은 일반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회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여서 이에 대한 규정은 상당히 엄격하였다. 교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들 규정을 잘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교회의 규정으로 오페라 공연에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많았다. 남자가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여자 옷을 입고 수염도 말끔하게 깎았다고 해도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무대에 나가기 전에 헬륨가스를 흠뻑 들여 마셨다. 폐와 성대에 영향을 주어(정확히 말하면 폐와 성대를 부풀리게 하여) 여자 목소리를 아주 비슷하게 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저녁 내내 헬륨 가스를 들여 마시면서 여성 파트를 노래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몇 제법 똑똑한 의사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남성의 신체에서 남성다움을 나타나게 해주는 어떤 부분을 제거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의사들은 그 옛날, 사원에서 사제들을 거세 수술하여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했던 것을 상기하였다. 그렇게 거세 수술을 받은 사제들은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남성답지 않았다. 똑똑한 의사들은 이 사실에 착안하여 십대의 어린 소년들에게서 남성 호르몬 작용을 제거하는 수술을 과감하게 시술해 주었다. 돈도 벌고! 그러자 과연 얼굴에 수염도 나지 않았으며 변성기가 되어도 어릴 때의 목소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다만,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아빠’가 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여 ‘어린 테너’들은 나중에 소프라노가 되었고 ‘어린 베이스’들은 알토가 되었다. 이들을 이탈리어어로 카스트라티(Castrati: Castrato의 복수형)라고 불렀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크세르크세스)에서. 카스트라티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요즘에는 카운터 테너들이 부른다.
트럼펫과 플루트의 소리
카스트라티는 남성이기 때문에 소프라노 아리아를 부를 때 여성보다 무척 힘이 있었다. 남성 호르몬을 제거했다고 해도 성장한 남성으로서 훌륭한 폐활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운찬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복합된 소리였다. 기록에 의하면 카스트라티들의 소리는 트럼펫처럼 힘찼으며 플루트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스타 카스트라티는 최고의 인기와 명예와 부를 차지하였다. 스타 카스트라티에 대한 일반 대중들, 특히 돈 푼이나 있는 귀족 아줌마 부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어떤 카스트라티는 왕궁에도 영향을 끼쳐 장희빈이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돌아갈 정도로 부와 권세를 차지하였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카스트라티 전용작품을 더 부지런히 생산해야 했다. 카스트라티를 위한 오페라 중에는 반드시 소프라노를 위한 작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Orfeo)에서 남성주역은 카스트라티가 맡아하도록 되어있다. 헨델의 유명한 오페라 줄리우스 시저(Julius Caesar)의 시저 역할도 카스트라티를 위해 작곡한 것이었다.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체사레(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체사레의 역할은 카스트라토 또는 카운터 테너가 맡는다. 현대적 연출
브라비씨모! 화리넬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카스트라토는 아마 화리넬리(Farinelli)일 것이다. 런던, 비엔나, 마드리드 등 유럽 전역에서 25년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전설적 존재였다. 그는 돈도 무척 많이 벌어서 호화 생활을 했다. 원래 이름은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이며 화리넬리는 예명이었다. 당시에는 카스트라티마다 예명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셰르(Cher), 마돈나(Madonna)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정상의 인기를 누렸지만 나중에는 불행하게도 멸시를 받았다.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역할만 하다 보니 여자처럼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도 봐주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여성처럼 신경질을 내는 데에는 더 참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당대의 카스트라토 화리넬리
근세에 들어와서는 여성의 오페라 출연이 가능해 졌기 때문에 더 이상 카스트라티 후보생들에게 거세 수술 신청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들은 카스트라티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아빠가 되는 것을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남성 소프라노, 남성 알토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옛날 카스트라티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자원하는 향수병 남성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잘만하면 인기와 부를 거머쥘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아무리 21세기라고 해도 17세기의 오페라를 공연하려면 카스트라티를 등장시키는 것이 제격이라는 배부른 해석이 뒤따랐고 그러자면 옛날 스타일의 카스트라티가 출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의학의 발달과 함께 남성의 상징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도 여성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되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7세기 이탈리아에서와 같은 카스트라티 소리는 아마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카스트라티가 맡아 하도록 한 오페라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 '화리넬리와 왕'(Farinelli and the King). 화리넬리 역에 샘 크레인, 왕 역에 마크 라일랜스.바이폴라 증세가 있는 국왕은 카스트라토의 노래를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스페인의 필립 5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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