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700-1765) 골 족의 또 다른 뮤즈: 무적의 라모

정준극 2008. 3. 5. 08:56

(1700-1765) 골 족의 또 다른 뮤즈: 무적의 라모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711: 영국의 트럼펫 주자인 존 쇼어(John Shore)가 말굽처럼 생긴 음차를 처음으로 발명하여 핏치를 측정할수 있게 했다.

1712: 유럽에서 마녀 사냥이 유행되었으며 영국에서는  1712년 마지막으로 마녀가 화형을 당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는 마녀 사냥을 몇 년 더 했다. 프랑스에서는 1745년 마지막 마녀가 화형을 당했다. 독일에서는 그보다 훨씬 후인 1775년 마지막 마녀가 화형에 처해졌다. 이 기간동안 약 1백만명의 남녀가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이름아래 화형에 처해졌다. 오페라의 주제로 마녀가 등장하는 것은 이 시대의 유산이다.

1714: 오페라 개혁주의자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룩이 태어났다.

1726: 조용하고 우아한 프랑스 발레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발레리나인 라 카마르고(La Kamargo)가 파리 오페라의 막간 공연에서 높은 점프를 보여주었다. 놀랄만한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1732: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셉 하이든이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장 필립 라모


륄리가 프랑스의 오페라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여러명의 특출한 오페라 작곡가들이 솟아 나왔다. 앙드레 캄프라, 마랭 마레, 미셸 드 몽테클레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는 진정으로 프랑스적인 뛰어난 작곡가였다. 라모의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그 때까지 볼수 없었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라모는 그때까지 구경도 하지 못했던 몇가지 악기를 도입하였다. 예를 들면 클라리넷이다. 그리고 오페라의 아리아나 레시타티브의 형식보다는 대사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아름다운 프랑스어의 음률을 최대한 살리는 매끄럽고 아름다운 대사를 오페라에 도입한 것이다. ‘아름답고 예술적인 프랑스어 만세!’ 프랑스 사람들은 이제야 진짜 프랑스 오페라를 만났다고 하면서 환호했다. 라모는 오페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잘라 버렸다. 서막은 그에게 1차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었다. 오페라는 오페라로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17세기말과 18세기 초의 프랑스 오페라에 있어서 라모의 기여는 절대로 과소평가될수 없었다.


라모의 '캬스토와 폴럭스'. 현대적 연출. 파리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