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1800) 모차르트의 유명미달 오페라: 하이든의 더 유명미달 오페라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791: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쓸쓸하게 요단강을 건너갔다.
1793: 프랑스의 루이16세가 길로틴에 처형되었다. 파리의 혁명광장에서였다. 백성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여 프랑스 혁명을 앞당기는데 기여했다.
1801: 노르마와 몽뮤병자의 벨리니가 이탈리아의 시실리에서 태어났다. 벨리니는 불과 33세의 젊은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재박명!
1809: 하이든이 비엔나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천재장수!
모차르트의 '미트라디테'. 벨기에 라모네
모차르트가 쓴 오페라라고 해서 모두 4강(Big Four) 티켓을 딴 것은 아니다. 아무리 모차르트 제품이라고 해도 루치오 실라(Lucio Silla), 미트리다테(Mitridate), 일 레 파스토레(Il re pastore)같은 제품은 별로 들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공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강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8강에는 올라갈 정도의 작품들이 더러 있다. 이도메네오(Idomeneo), 후궁에서의 도주(Entführung aus dem Serail),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마지막 작품)등이다. 모차르트와 거의 같은 연배를 살았던 대선배 하이든은 어떠한가? 하이든은 모차르트보다 24년이나 위였지만 오페라에 있어서는 선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이든은 후원자인 주인(에스터하지 가족)을 위해 여러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그중 몇편은 당시에 한두번 공연되었을 뿐이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까지 한번도 공식적인 일반무대에 올려지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미안한 일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수준에 까지 오른 작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원숙한 작품들이다. 어쨌든 하이든은 모차르트만큼 무대음악에 본능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것 같았다. 대본을 받으면 그저 대본에 음악을 붙였을 뿐이다. 그래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음악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이든의 '달 세계.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다. 아마 대사가 많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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