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1900) 푸치니와 크라잉게임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58: 쟈코모 푸치니가 루카(Lucca)에서 태어났다. 4대째 작곡가 집안이었다. 푸치니가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집안 내력이라고 볼수 있다. 루카는 보케리니와 카탈라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1861: 호주의 멜본 부근에서 위대한 소프라노 넬리 멜바가 태어났다. 멜바는 역사적인 런던 성공이후 그가 즐겨 먹던 아이스크림 후식과 토스트 빵에 그의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차지했다.
1877: 길버트의 재치있는 대사와 설리반의 유쾌한 멜로디가 처음으로 합작을 이룬 마법사(The Sorcerer)가 런던에서 선보이자 런던은 온통 G&S 얘기뿐이었다. 마법사는 런던에서만 연속 175회 공연되었다.
1896: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푸치니의 라 보엠이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의 레지오(Reggio)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900: 푸치니의 토스카가 로마 코스탄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푸치니의 오페라중에서 가장 눈물을 짜게 만드는 나비부인은 1904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라 보엠'. 메트로폴리탄. 미미에 마리아 아그레스타, 로돌포에 브라이언 하이멜
오늘날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푸치니의 작품이다. 오페라의 황제는 베르디이지만 인기에 있어서는 푸치니를 따라갈 형편이 아니었다. 푸치니는 어떻게 해야 오페라가 성공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간단한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멜로디, 애절한 사랑의 스토리, 때로는 이국적인 배경...물론 이런 것들이라면 다른 오페라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그렇지만 푸치니의 오페라에는 분명히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나비부인이 어린 아들을 남겨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는 사람은 있다면 그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닐수 없다. 병들어 쇠약해진 미미가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이미 때가 늦어 마지막 숨을 쉬는 장면을 보고 손수건을 꺼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토스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목숨을 버리는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다. 작곡가들이 성공할수 있는 척도는 어떻게 해야 최루탄 게임(Crying Game: 누가 잘우는지에 대한 게임)을 잘 하느냐에 달려 있는것 같다.
'나비부인'에서 초초상의 자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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