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910-1950) 오페라와 나치 독일: 힌데미트, 봐일 그리고 망명자들

정준극 2008. 3. 5. 09:55

(1910-1950) 오페라와 나치 독일: 힌데미트, 봐일 그리고 망명자들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929: 힌데미트의 오페라 Neues vom Tage(오늘의 뉴스)를 본 히틀러가 놀라 자빠졌다. 무대에서 소프라노가 옷을 벗은채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1933-1939: 이 기간 동안에 약 6만명의 독일 음악예술가들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은 히틀러 때문에 세계 제일의 음악예술 왕국이 되었다.

1945: B-25 폭격기가 뉴욕 상공을 비행하다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당의 78층과 79층을 받았다. 9.11 사태의 예고편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8월에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름대로 자기의 방향을 개척해 가고 있었고 이른바 제2의 비엔나 학파도 새로운 방향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때 파울 힌데미트(1895-1963)와 쿠르트 봐일(1900-50), 그리고 독일의 여러 작곡가들(오스트리아 포함)은 자기들만의 오페라 형태를 개척해 가고 있었다. 힌데미트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기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작곡가로서 그는 1920년대에 스트라빈스키 등에 의해 기치를 들게된 신고전주의 조류에 동승하였다. 그의 첫 전작 오페라인 Cadillac(캐딜락: 미국 자동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혼동하지 말것)은 낭만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Mathis der Maler(화가 마티스)는 15세기에서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화가 마티스 그뤼네발트(Mathis Grünewald)의 삶을 조명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할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힌데미트는 나치를 피하여 미국으로 떠났다.


스트리빈스키의 '외디푸스 렉스'


쿠르트 봐일은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았으나 1920년대 말부터는 모든 것이 변하였다. 그는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캬바레 스타일의 대중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Die Dreigroschenoper(서푼짜리 오페라: The Threepenny Opera)에 나오는 맥 더 나이프(Mack the Knife)는 사회주의를 앞세운 허울 좋은 개혁을 빗대어 풍자한 노래이다. 그는 힌데미트와 마찬가지로 1933년 베를린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으며 주로 브로드웨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쿠르트 봐일의 '서푼짜리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