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음악의 도시 비엔나

정준극 2008. 3. 5. 09:57

참고자료 - 음악의 도시 비엔나

 

부르크가르텐의 모차르트 기념상

               

합스부르크제국의 영화를 간직한 비엔나는 오페라에 있어서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 특히 18세기 초 레오폴드(Leopold)1세 치하의 비엔나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 중에서 오페라에 대한 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꽃핀 곳이었다. 레오폴드1세는 즉위하자마자 현재 비엔나의 요세프플라츠(Josepfplatz)에  궁정오페라극장(Burgtheater)을 지었다. 오늘날 슈타츠오퍼의 전신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찬미자였으며 자칭 음악가로서 작곡도 했던 레오폴드1세는 이 건물을 특별히 이탈리아 오페라 공연을 위해 마련했다. 이 극장에서 1666년 체스티(Cesti)의 Pomo d’oro(황금사과)가 공연된 것은 전유럽의 화제꺼리였다. 대단히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무대였다. 이같은 합스부르크 황제의 오페라 후원과 오페라 인프라 구축은 비엔나에 수많은 음악가들이 모여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이로서 18세기 중반으로부터 비엔나에는 이른바 제1비엔나 학파가 형성되어 비엔나를 서구음악의 중심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비엔나에 오페라를 전성케 한 선구자는 요한 요세프 푹스(Johann Joseph Fux)이다. 슈티리아(Styria)출신인 푹스는 3명의 합스부르크 황제 치하에서 궁정 작곡가 겸 궁정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지낸 최초의 비이탈리아 사람이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                                       


푹스는 레오폴드1세, 요세프1세, 그리고 카를6세를 거친 사람이지만 나폴리학파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는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지나치게 나폴리 냄새를 풍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폴리 스타일을 참조로 하긴 했지만 자기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여 바로크 실내음악, 종교음악, 극장음악을 작곡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이탈리아와는 차이가 나는 새로운 자체적인 음악을 소개한 것이다. 이를 기틀로 1728년부터 오스트리아의 오페라는 비엔나를 중심으로 서서히 만개하기 시작했다. 궁정 음악가인 프란츠 보로시니(Franz Borosini)와 궁정 성악가인 카를 젤리어(Karl Sellier)가 비엔나의 캐른트너토르(Kärntnertor)극장을 인수하여 본격적인 오페라 공연에 들어간 것은 비엔나 오페라의 연혁에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마도 비엔나 오페라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1778년 (22세의 모차르트가 한창 유럽 순회 여행을 다니던 때) 궁정극장(Hoftheater)과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를 건축한 것이었다. 이 공사를 지시하였던 요세프2세 황제는 ‘슈타츠오퍼와 호프테아터(궁정극장)가 제국(합스부르크)을 위한 문화교육의 산실로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르크테아터의 위용
                                              

이후, 비엔나의 오페라가 어떤 행로를 지내왔는지를 설명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비엔나를 본거지로 활동하였던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요한 요제프 푹스(Johann Joseph Fux: 1660 히르텐펠트-1741 비엔나)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 에라스바흐-1787 비엔나)

-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 로라우-1809 비엔나)

-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1750 레냐노- 1825 비엔나)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 A. Mozart: 1756 잘츠부르크- 1791 비엔나)

-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 본- 1827 비엔나)

-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 비엔나 - 1828 비엔나)

- 안톤 브루크너 (Anton Bruckner: 1824 안스펜델 - 1896 비엔나)

- 요한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 함부르크 - 1897 비엔나)

- 휴고 볼프 (Hugo Wolf: 1860 빈디슈그래츠 - 1903 비엔나)

- 구스타브 말러 (Gustav Mahler: 1860 보헤미아 칼리슈트 - 1911 비엔나)

-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Alexander von Zemlinsky: 1872 비엔나 - 1942 뉴욕)

-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Erich Wolfgang Korngold: 1897 브륀 - 1957 할리우드)

- 아놀드 쇤베르크 (Arnold Schonberg: 1874 비엔나 - 1951 로스앤젤레스)

- 안톤 폰 베베른 (Anton von Webern: 1883 비엔나 - 1945 잘츠부르크 부근 미테르질)

- 알반 베르크 (Alban Berg: 1885 비엔나 - 1935 비엔나)

 

베토벤플라츠의 베토벤기념상


이밖에도 비엔나를 중간 기착지로 하여 거쳐간 작곡가는 헤아릴수 없이 많다. 페루치 부소니, 바그너, 리스츠, 드보르작, 스메타나, 야나체크, 쇼팽 등등. 한편,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오페레타 작곡가들도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다. 비엔나 왈츠와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대를 마련해준 중심인물들의 면모는 다음과 같다.


- 요셉 란너(Joseph Lanner: 1801 비엔나 - 1843 비엔나)

- 요한 슈트라우스 1세 (Johann Strauss Sr.: 1804 비엔나 - 1849 비엔나)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Jr.: 1825 비엔나 - 1899 비엔나)

- 요세프 슈트라우스 (Josef Strauss: 1827 비엔나 - 1870 비엔나)

-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 (Eduard Strauss: 1835 비엔나 - 1916 비엔나)

- 프란츠 폰 주페 (Franz von Suppé: 1819 슈츨리트 - 1895 비엔나)

- 카를 요세프 밀뢰커 (Carl Josef Millöcker: 1842 비엔나 - 1899 비엔나 근교 바덴)

- 카를 요한 아담 첼너 (Carl Johann Adam Zeller: 1842 생테르부르크 - 1898 비엔나 근교 바덴)

- 카를 미하엘 치레르 (Carl Michael Ziehrer: 1843 비엔나 - 1922 비엔나)

- 리하르트 호이버거 (Richard Heuberger: 1850 그라츠 - 1914 비엔나)

- 레오 팔 (Leo Fall: 1873 욀뮈츠 - 1925 비엔나)

- 프란츠 레하르 (Franz Lehar: 1870 슬로바키아 코모른 - 1948 바드 이슐)

- 엠머리히 칼만 (Emmerich Kalman: 1882 헝가리 시오포크 - 비엔나 - 1953 파리)

- 오스카 슈트라우스 (Oscar Straus: 1870 비엔나 - 1952 바드 이슐)

- 랄프 베나츠키 (Ralph Benatzky: 1884 매리슈-부드비츠 - 비엔나 - 1957 취리히)

- 파울 아브라함 (Paul Abrahma: 1892 헝가리 아프파틴 - 비엔나 - 1960 함부르크)

- 로베르트 슈톨츠 (Robert Stolz: 1880 그라츠 - 비엔나 - 1975 베를린)


 

슈타트파르트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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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비엔나 학파?

 

제2의 비엔나학파(School)가 있으면 제1의 비엔나학파도 있을 테지만 실제로 제1학파는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쇤버그를 포함한 제2 비엔나학파의 작곡가들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을 제1의 비엔나학파라고 불렀다. 오늘날 비엔나는 대담하고 실험적인 작곡활동이 가장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는 곳이 되었다.


제2의 비엔나학파를 이끈 아놀드 쇤버그(아르놀트 쇤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