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910-1980) 사회의 방관자들: 브리튼과 피터 그라임스

정준극 2008. 3. 5. 09:58

(1910-1980) 사회의 방관자들: 브리튼과 피터 그라임스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917: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다. 짜르 니콜라스 2세는 폐위된후 암살당했다.

1922: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존 흄(John Hume)이라는 이름으로 영국공군에 입대하였다. 공군에서 그의 정체가 들어나자 이번에는 T.E. 쇼(Shaw)라는 이름으로 영국 탱크부대에 들어갔다.   


벤자민 브리튼


러시아와 동구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있을 때 영국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에텔 스미스의 The Wreckers(조난자: 1906), 랄프 본 윌리엄스의 Sir John in Love(사랑에 빠진 존경: 활슈타프를 바탕으로 함. 1928), Riders to the Sea(바다의 항해자: 1932), 그리고 러트란드 바우튼의 바그너 스타일 오페라인 The Immortal Hour(불멸의 시간:1914)이 영국의 오페라 무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청년 벤자민 브리튼(1913-76)이 나타남으로서 영국의 오페라는 세계의 무대를 향하여 일약 새롭게 도약하였다. 1945년 6월 7일, 아직도 전쟁의 여파가 짓눌려있는 때에 초연된 Peter Grimes(피터 그라임스)는 놀랄만한 시도였다. 평론가들은 이 날을 역사적인 밤이라고 말하고 현대 오페라에서 깜짝 놀랄 정도의 획기적인 출현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어떤 점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충격적일만큼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이며 확신을 주는 내용이고 즉각적으로 마음에 울리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브리튼은 사회에서 약간의 소외를 당하였다. 동성연애자였기 때문이다. 테너 피터 피어스와 동거했다. 물론 당시 영국에서 동성연애는 불법이 아니었지만 사회의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그의 말년부터 놀랍게도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 발렌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