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50) 미국의 오페라: 도대체 우리는 뭔가?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904: 뉴욕에서는 여자가 대중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체포되었다.
1906: 오스카 햄머슈타인(Oscar Hammerstein)이 뉴욕에서 맨해튼오페라단을 만들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너무 인기가 높아 메트로폴리탄을 위협할 정도였다. 메트로는 햄머슈타인에게 앞으로 10년동안 뉴욕에서 오페라를 제작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백20만불을 주기로 약속했다. 햄머슈타인은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1913: 미국에서는 챨스톤(Charleston)이라는 폭스트롯이 대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1935: 미국에서 두 단의 키보드와 페달 키보드가 있는 해몬드 오르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지 거슈인의 ‘포기와 베쓰’가 초연되었다. 조지 거슈인은 그로부터 2년후인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
조지 거슈윈
역사적으로 세계가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시기에 미국의 오페라 무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미국산 첫 오페라는 1845년 나온 윌리엄 헨리 프라이(William Henry Fry)의 레오노라(Leonora)이며 그로부터 약 10년후 나온 조지 프레데릭 브리스토우(George Frederick Bristow)의 Rip Van Winkle(립 반 윙클: 무대에서는 잠들지 않고 있음을 유의하기를!)이다. 이밖에도 몇편 성공적이라고 할수 있는 작품들이 있었으나 문제는 본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적인 특유함!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적 자아발견은 미국 작곡가들이 안고 있는 숙제였다. 이 숙제는 20세기의 말에 이르기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1906년에 나온 프레데릭 콘버스(Frederick Converse)의 The Pipe of Desire(욕망의 파이프)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된 최초의 미국 오페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미국의 오페라였는가? 해답은 프레데릭 콘버스의 ‘욕망의 파이프’가 나온지 30년만에 발견할수 있었다. 1935년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Porgy and Bess(포기와 베쓰)가 그것이다. 그때까지 볼수 없었던 새로운 오케스트레이션과 스토리를 개척한 걸작이었다. 이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미국적 오페라이다. 이어서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의 등장은 미국 오페라의 판도를 변화시킨 일이었다. 그의 후기 베리스모 작품으로는 The Telephone(전화: 1947), The Medium(영매: 1946), The Consul(영사: 1950), 그리고 Amahl and the Night Visitors(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1951) 등이 있다. 미국의 오페라는 자기상실의 위기(Identity Crisis)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 > 고대 그리스-21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50-1990) 확산주의와 축소주의: 글라스를 통해 보는 세상 (0) | 2008.03.05 |
---|---|
파트론(Patron)의 정체 (0) | 2008.03.05 |
앨드버러(Aldeburgh)음악제 (0) | 2008.03.05 |
(1910-1980) 사회의 방관자들: 브리튼과 피터 그라임스 (0) | 2008.03.05 |
(1880-1960) 스트라빈스키의 인생행로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