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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품 해석 Alexander Kipnis (알렉산더 키프니스)

정준극 2008. 3. 5. 11:42
 

뛰어난 작품 해석 Alexander Kipnis (알렉산더 키프니스)

 

알렉산더 키프니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나중에 미국 시민이 된 알렉산더 키프니스는 뛰어난 베이스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음악해석자였다. 그는 특히 폭넓은 음악적 통찰력과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중한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성악의 모든 분야, 모든 작품에 대한 충실한 탐구가 있어야했다. 키프니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나 많은,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여 음악에 대한 지식을 마스터했다. 그리하여 그는 모차르트와 바그너, 무쏘르그스키와 드빗시, 베르디와 로시니, 슈베르트, 브람스, 볼프 등 어느 작품이더라도 예리하고 훌륭한 해석으로서 탁월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의 노래는 세련미, 유연성, 품위성, 그리고 발성과 공명에 있어서 다른 어느 누구도 따를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보리스 고두노프 역의 알렉산더 키프니스


알렉산더 키프니스는 1891년 우크라이나 중소도시인 노비부그(Novybug)에서 가난한 유태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보이스 소프라노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노비부그의 유태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때 독창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다른 도시의 유태교 회당 칸토(Cantor: 독창자 겸 찬양단 지휘자, 통상 유태교 회당의 음악책임자)가 우연히 키프니스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아 키프니스를 자기의 회당으로 데려가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그를 다른 도시로 데려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칸토는 키프니스의 할머니를 설득하여 약간의 사례를 주고 승낙을 받았다. 그러던 중 키프니스의 아버지가 유태교 회당 찬양대의 어떤 나이 많은 테너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그 테너로부터 레슨을 받는 대신 거의 매일 그 테너의 진흙 묻은 장화를 깨끗이 닦아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노비부그의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거리가 모두 질퍽질퍽 했으며 장화 없이는 살수 없는 곳이었다. 하여튼 아들을 위해 남의 장화까지 닦아주는 대단한 아버지였다.

 

 구르네만츠 역의 알렉산더 키프니스

 

어느정도 성악에 대한 기본 공부를 한 키프니스는 바르샤바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를 하였으며 그후 베를린에 가서 에른스트 그렌체바흐(Ernst Grenzeback)에게서 성악 레슨을 받았다. 그때 함께 레슨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나중에 세계적 베이스가 된 로리츠 멜키오르(Lauritz Melchior), 막스 로렌츠(Max Lorenz) 등이 있다. 베이스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키프니스는 함부르크와 비스바덴 등지에서 오페라에 출연하여 경력을 쌓은후 1919년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주역 베이스로 발탁되었으며 이로부터 그는 꼭 10년 동안 베를린 슈터츠오퍼에서 활동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태인으로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키프니스는 더 넓은 세상을 학습하기 위해 베를린을 떠나 비엔나 슈터츠오퍼,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등에서 바그너와 모차르트의 베이스로서, 그리고 이탈리아와 러시아 오페라의 뛰어난 해석자로서 활동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1937년 쯤해서는 그의 이름이 세계 유명 오페라 하우스의 프로그램을 빈번하게 장식하는 것이 되었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차지했다. 유태인인 그는 이미 1931년, 나치의 반유태인 움직임이 시작될 때에 미국이민을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미국시민이 되었다. 미국시민이 정식으로 되기 전에 그는 이미 1923년부터 시카고오페라의 주역 멤버로서 상당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거의 10년동안 시카고에 있었던 그는 2차 대전중 잠시 휴식을 가진후 1940년 메트로의 권유에 따라 메트로의 단원으로 합류하였다. 메트로에서의 대표적인 역할은 마크 왕(트리스탄과 이졸데), 아르켈, 헤르만, 하겐, 훈딩(라인의 황금), 옥스(장미의 기사), 자라스트로(마적), 니칼란타(라크메), 보리스(보리스 고두노프) 등이었다. 키프니스는 1952년까지 12년 동안 메트로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후에는 전미국을 순회하는 콘서트를 가져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뉴욕음악대학의 교수로서 활동하다가 1978년 세상을 떠났다. 메트로가 키프니스에게 감사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키프니스가 메트로에게 감사할 것인가는 아직도 숙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크왕 역의 알렉산더 키프니스 (바이로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