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비엔나의 사랑 요한 슈트라우스

정준극 2008. 3. 7. 18:35

비엔나를 대표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비엔나를 대표하는 4명의 인물이 있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비운의 왕비 엘리자베트(씨씨), 관능미의 화가 클림트, 그리고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다. 하지만 이들중 모차르트는 잘 아는대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엘리자베트(씨씨) 왕비는 독일의 바바리아에서, 클림트는 비엔나 근교의 바움가르텐(Baumgarten)에서 태아났기 때문에 비엔나 토박이라고 볼수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만이 비엔나 토박이이다. 그런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세상을 떠날 때에 국적이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코부르크(Coburg) 공국이었다. 말하자면 독일 시민이 된 것이다. 세번째 부인 아델레와의 결혼을 위해 개신교인 코부르크 공국의 시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를 비엔나의 위대한 시민으로 당연히 찬양하고 있다. 독일 시민이 된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를 기념하여 '황제 왈츠'(Kaiser Walzer)를 작곡했다는 얘기가 있다. 당시 프러시아의 빌헬름 황제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 음악학자들은 '황제 왈츠'의 황제는 당연히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를 말한다는 주장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왈츠의 왕’이라고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는 비엔나 왈츠를 혁명한 작곡가이다. 그는 농부들의 무곡인 란들러(Landler)를 품위와 예술성이 있는 합스부르크 궁전의 왈츠로 끌어 올린 작곡가이다. 그리하여 19세기 비엔나 왈츠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확히 말해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를 말한다. 보통 요한 슈트라우스(아들) [Johann Strauss (son), Johann Strauss the Younger, Johann Strauss Jr.,]이라고도 부른다. 독일어로는 Johann Strauss (Sohn)이라고 표기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25년 10월 25일 비엔나의 장크트 울리히(현재의 노이바우)에서 태어나 1899년 6월 3일, 향년 73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이다. 역시 왈츠 작곡가들인 요셉 슈트라우스(Josef Strauss: 1827-1870)와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Eduard Strauss: 1835-1916)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들이다. 그는 수많은 왈츠, 폴카, 행진곡, 오페레타를 남겼다. 대표적인 왈츠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이며 대표적인 오페레타는 ‘박쥐’이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프라터슈트라쎄 54번지. 이 집의 2층은 기념관으로 되어 있으며 2009년 현재 아래층에는 '4분의 3박자'라는 식당이 들어서 있다. 종전에는 1층에 맥도날드가 있어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1980년대의 프라터슈트라쎄 54번지. 맥도날드가 있었다.


[경력]

요한 슈트라우스는 역시 작곡가인 아버지를 훨씬 능가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차지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9세기에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왈츠 작곡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전역은 물론 폴란드, 독일에서 왈츠 연주회를 가져 놀라운 환영을 받았다. 그는 생전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가 지휘를 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만이라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창 때에는 매일 밤, 거의 두세 곳에서 지휘를 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그래서 지휘 도중에 슬며시 빠져나와 대기시켜 놓았던 피아커를 타고 다른 연주회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보통이었다. 연주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그런 사정을 알고 양해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쇼맨쉽도 강했다.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장이면 어느 곳이든지 건물 앞에 ‘Heute Spielt der Strauss!'(금야 슈트라우스가 연주하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 놓게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나 러시아를 방문했다. 러시아에서는 많은 작품을 작곡하여 연주했다. 그는 비엔나에 돌아 와서는 러시아에서 작곡한 왈츠를 비엔나 팬들을 위해 다시 편곡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 슈트라우스

 

영국에서는 소프라노인 첫 번째 부인 예티 트레프즈(Jetty Treffz)와 코벤크 가든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연주회를 가져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1870년대 말에는 미국을 방문하여 보스턴 페스티벌에서 1천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특히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왈츠는 수만명의 청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것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또 다른 유명 왈츠로는 Morgenblätter(조간신문), Künstlerleben(예술가의 생애), Kaiser-Walzer(황제 왈츠), Frühlingtimmen(봄의 소리 왈츠), Rosen aus dem Süden(남국의 장미) 등이 있다. 폴카로는 Annen(안넨 폴카), Tritsch-Tratsch-Polka(트리치-트라치 폴카)등이 있으며 오페레타로는 ‘박쥐’이외에도 ‘집시남작’ ‘비엔나 기질’ ‘베니스의 하루밤’등이 있다.

 

프라터슈트라쎄 54번지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관 내부. 피아노는 뵈젠도르프 임페리알 290이며 바이올린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사용하던 것이다.

 

*************************


오스트리아에서는 부케를 블루멘 슈트라우스(Blumen Strauss 또는 Blumenstrauss)라고 부른다.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기 때문인 것 같다. 블루멘 슈트라우스라는 꽃집도 있다. 슈트라우스의 복수형은 슈트로이세(Sträusse)이다.

 

블루멘 슈트라우스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플로트가쎄 7번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태어난 집이다.

 

ä

'비엔나와 음악 > 슈트라우스 왕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엔나 신년 음악회   (0) 2008.03.07
요한 슈트라우스의 무대 작품  (0) 2008.03.07
라이발과 팬들  (0) 2008.03.07
놀라운 재능의 음악 가족  (0) 2008.03.07
세번의 결혼  (0) 2008.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