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세기말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정준극 2008. 3. 7. 19:03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발자취 

 

구스타브 말러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말러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나치 치하에서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모든 발자취가 지워질뻔 했지만 전후에 음악애호가들이 비엔나에서 말러의 발자취를 보존하기 시작했다.

 

말러가 작곡에 전념했던 작은 오두막집. 잘츠카머구트의 아터제(Attersee) 호반에 있다. 말러는 이 작은 잡에서 교향곡 2번과 3번을 작곡했다.

아터제에 있는 말러 작곡의 오두막집 인근에는 제펠트(Seefeld) 호텔이 있다. 말러는 이 호텔레도 간혹 투숙했다. 그것을 기념하여서 호텔의 방 하나는 피아노와 함게 말러 기념실로 보존되어 있다.

 

- 말러는 현재 체코공화국의 칼리스트(Kalist)에서 1860 7 7일 태어났다. 물론 당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였다. 칼리스트에는 말러 기념상과 함께 기념관이 있다.

 

체코공화국 칼리스트의 말러 생가. 벽에 MAHLER라고 적혀 있다.

                  

- 비엔나에 말러의 기념 명판이 있는 곳은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의 현관 문 옆 벽면이다. 콘체르트하우스는 1구 로트링거슈트라쎄 20번지에 있다. 슈타트파르크 뒤쪽이다. 이 명판은 2차 대전이 끝난후인 1945 6월초에 오스트리아음악가연맹이 만들어 부착했다. 또하나의 명판이 붙어 있는 곳은 3구 아우엔부르거가쎄(Auenburgergasse) 2 번지이다. 러시아 군인 기념상과 분수로 알려진 슈봐르첸버거플라츠에서 렌베그(Rennweg)로 올라가다 보면 초입에 있는 짧은 거리가 아우엔브루거가쎄이다. 하벨베데레의 끝자락 쯤에 있다고 보면된다. 말러가 살았던 집이다.

 

로트링거슈트라쎄 20번지 비너 콘체르트하우스의 외벽에 부착되어 있는 구스타브 말러 기념명판

비너 콘체르트하우스. 베토벤플라츠의 건너편이다.

3구 아우엔부르거가쎄 2번지에 말러가 살았었다는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 말러가 슈타츠오퍼에서 활동했던 것을 기념하여서 슈타츠오퍼의 부근, 브리스톨 호텔 뒷편 길을 말러슈트라쎄(Mahlerstrasse)라고 이름붙였다.

 

슈터츠오퍼 인근의 말러슈트라쎄. 브리스톨 호텔 뒷편 길이다.

 

- 슈타츠오퍼1층 회랑에 있는 말러의 얼굴 조각은 로댕의 작품이다. 말러가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서 기여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조각 작품이다. 최근 문을 연 슈타츠오퍼 박물관(괴테가쎄로 들어가면 입구가 있다)에는 말러의 두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사용하던 지휘봉도 전시되어 있다.

 

로댕이 제작한 구스타브 말러 흉상(비엔나 슈타츠오퍼)

                      

- 말러의 묘소는 19구 되블링의 안 덴 랑겐 뤼쎈(An den langen Lüssen)에 있는 그린칭거 프리드호프(그린칭 공동묘지) 7구역에 있다. 쇼텐토르에서 38번 전차를 타고 가다가 후슈카가쎄(Huschkagasse)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그린칭 공동묘지이다. 그린칭 공동묘지 6구역의 부인 알마 말러 베르펠(결혼전 이름은 알마 쉰들러)의 묘지가 있다. 말러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 몇발짝 떨어진 곳이다. 알마는 재혼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농 그로피우스와 합장되어 있다. 마농은 18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말러가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난 집. 9구에 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철도청 사무실이다.

 

 그린칭 공동묘지에 있는 말러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