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베니스 음악계의 거성
발다싸레 갈루피
18세기 베니스 음악계에서 중심되는 역할을 했던 발다싸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1785)는 종교음악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지만 오페라 부파에서도 빛나는 작품들을 남겼다. 베니스 근교의 부라노(Burano)에서 태어난 갈루피는 부라넬로(Il Buranello: 부라놀 출신의 인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 음악가들이 유럽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지냈던 것에 비해 생애의 거의 모두를 베니스에서 지냈다. 다만, 런던에서 2년(1741-43), 생페테르부르크에서 3년(1765-68)을 지냈을 뿐이었다. 고향마을에서 베니스로 나온 갈루피는 처음에 안토니오 로티(Antonio Lotti)에게서 작곡을 배워 작곡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그근 청년의 열정으로 첫 오페라 La fede nell'incostanze(1722)를 작곡하여 무대에 올렸다. 미안하게도 대실패였다. 갈루피는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귀에 울려 잠을 못 잤다. 마침 플로렌스에서 초청이 있었다. 갈루피는 플로렌스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활동했다. 음악활동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은 기간이었다.
7년후 베니스로 돌아온 갈루피는 이번에는 일반 오페라인 Dorinda(1729)를 내놓았다. 성공이었다. 이로서 갈루피는 무대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갈루피는 1748년부터 거의 20년동안 베니스 성마르꼬대성당의 음악감독을 맡아했다. 베니스음악계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위였다. 갈루피는 교회음악을 작곡하면서 한편 오페라 부파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다. 성마르꼬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듬해부터 오페라 부파를 작곡하여 내놓기 시작했다. 1749년에 내놓은 첫 오페라 부파인 L'Arcadia in Brenta는 당대의 대본가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와의 오랜 인연이 시작된 작품이었다. 골도니의 대본인 Il mondo della luna에 의한 오페라 부파는 대인기였다. 훗날 하이든, 파이시엘리(Paisielli) 등이 오페라의 대본으로 사용할 정도로 재미있는 소재였다. 1760년의 L'Amante Di Tutte와 1761년의 I Tre Amanti Ridicoli의 대본은 갈루피의 아들인 안토니오가 쓴 것이다. 그러나 안토니오 갈루피의 대본이라고 소개할것 같으면 부자간에 다 해먹는다는 소리를 들을것 같아서 아들 안토니오 갈루피는 A. Liteo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갈루피는 만년에 오페라 생산보다는 미사곡이나 오라토리오에 보다 전념하였다. 1785년 갈루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성마르꼬 성당에서 그를 추모하는 진혼곡 특별연주회가 열렸다. 비발디는 2편의 성가합창곡을 갈루피에게 헌정하였다. Beatus Vir와 Nisi Dominus였다.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A Toccata of Galuppi라는 시를 써서 갈루피를 기렸다. 갈루피는 당대에 베니스 최고의 음악가였다.
갈루피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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