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벨칸토의 주도자
조반니 시모네 마이르
독일 바바리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작곡 활동을 한 조반니 시모네 마이르(Giovanni Simone Mayr: 1736-1845)는 이탈리아에 독일 스타일의 낭만 오페라를 소개한 인물로 오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요한네스 시몬 마이르(Johannes Simon Mayr)였다.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바바리아의 Mendorf) 분명히 독일 작곡가이지만 24세때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며 활동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작곡가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생전에 약 7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중에서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Ginevra di Scozia(스코지아의 지네브라) 정도이다. 하지만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의 명성은 높이 평가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오페라는 1801년 트리에스테 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기념으로 초연되었다. 그러나 그후 오래동안 잊혀 있다가 200년 후에야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이 오페라가 생소할지는 모르지만 스토리는 친숙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Much Ado About Nothing(공연한 소동)의 스토리와 같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인 아리오단테(Ariodante)는 카스트라토가 맡도록 작곡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카운터 테너가 맡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작품은 지발도네(Zibaldone)이다. 마이르가 20대의 열혈 청년일 때에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가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은 바바리아의 마이르에게도 깊은 영향을 던져 주었다. 마이르는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Bavaria Illuminati(바바리아 일루미나티)라는 모임을 만들고 독일에서의 계몽주의 운동에 도화선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프랑스-독일에서의 계몽주의 사상이 그의 오페라 Zibaldone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1802년 30대 말의 나이에 마이르는 베르가모 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마이르는 세상 떠날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하였다. 당시 마이르는 베르가모음악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마이르가 주관하여 음악회를 개최하였으며 재능 있는 신예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기용하는 일을 했다. 그는 특히 베토벤의 음악을 베르가모에 소개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이르는 말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베토벤의 고난을 생각하며 역경을 이겨내고자 했다. 82세로 세상을 떠난 마이르는 베르가모의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Santa Maria Maggiore)에 안장되었다. 도니제티는 베르가모에서 마이르의 제자였다. 1848년 세상을 떠난 도니제티는 스승인 마이르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바로 앞에 묻혔다. 마이르의 작품 스타일은 가스파레 스폰티니, 그리고 프랑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이에르베르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실상 마이르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주도자였다. 로시니도 마이르를 존경하였지만 벨칸토 오페라에 있어서는 라이벌로 생각할 정도였다. 마이르는 약 7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중에서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는 다음과 같다.
'스코치아의 제네브라'
마이르의 오페라 수첩
● Saffo(1974) ● La Lodoiska(1796) ● Ginevra Di Scozia(1801) ● L'amor coniugale(1805) ● La rosa bianca e la rosa rossa(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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