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의 명인
루이지 보케리니
미뉴에트로 유명한 루이지 보케리니(Luigi Beccherini:1743-1805)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원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어려운 생활을 했던 작곡가였다. 그는 62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에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려야 했으며 더구나 그의 두 아들이 생활고 때문에 먼저 세상을 떠나자 마음에 타격을 입어 더 힘든 생활을 했다. 보케리니는 작곡보다는 바이올린 연주가로 많은 활동을 했다. 오페라는 두편만을 남겼다. La Clementina는 1786년 마드리드에서 완성한 것이며 Dorval e Virginia는 1800년에 토리노에서 공연되었다. 그의 성모애상곡(Stabat Mater)은 로시니, 드보르작의 것과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아버지는 현악기 연주자였다. 보케리니는 14세 때에 로마로 가서 몇 년 동안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작곡과 연주 기법을 배웠다. 고향에 돌아온 보케리니는 친구와 함께 지방 순회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회를 가졌다. 이 순회 연주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두 사람은 내친 김에 프랑스로 가서 합동 연주회를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연주회는 그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아 성공적이지 못했다. 다만, 파리에 있던 스페인 대사가 보케리니의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서 제발 스페인에 와서 살라고 초청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스페인으로 간다고 해서 무슨 큰 수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인자중하던중 마침 프러시아 황제가 그의 뛰어난 바이올린 솜씨와 작곡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비교적 후한 대우를 약속하며 프러시아에 와서 실내악을 맡아 달라고 했다. 몇 년 동안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명성도 쌓았다. 하지만 프러시아 후원자인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어쩔수 없이 프러시아를 떠나 새 직장을 찾아야 했다. 스페인으로 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어두운 골방 생활을 해야 했다. 답답한 어두움에서 도피하는 길은 작곡에 전념하는 일 뿐이었다. 두 아들이 영양실조 등의 이유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이 때였다. 위대한 작곡가 보케리니의 죽음은 몇몇 친구들 밖에 알지 못할 정도로 외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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