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조르다노, 움베르토

정준극 2008. 3. 11. 16:13
 

안드레아 슈니에의 대부

움베르토 조르다노

 

 

움베르토 죠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는 베리스모 스타일의 작곡가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카탈라니, 칠레아가 단 한편의 오페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죠르다노도 단 한편의 오페라, 즉 안드레아 셰니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Foggia(훠지아)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조르다노는 나폴리 다른 여러 음악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곡가의 길에 들어선 인물이다. 죠르다노는 나폴리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개인사정으로 중간에 한두번 휴학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수한 성적으로 음악원을 졸업할수 있었다. 작곡가로서 대성코자 결심한 그는 친구들의 권유로 Marina(마리나)라는 단막 오페라를 당시 유명한 출판사인 Sonzogno(손조뇨)의 경연대회에 출품했다. 여기에서 우승만하면 출세는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스카니의 Cavalleria rusticana(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으며 죠르다노의 작품은 입상에도 들지 못했다. 그러나 출판사측은 죠르다노의 작품을 대단히 관심있게 보고 단막이 아닌 전막의 오페라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안드레아 셰니에'


 그렇게 하여 나온 것이 첫 성공작인 Mala Vita(말라 비타)였다. 당시 유행이던 베리스모의 전형적인 작품이었다. 1892년 로마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오페라의 성공에 힘입어 내놓은 작품들은 더 로맨틱한 것이어서 환영을 받았다. 죠르다노의 대성공작은 1898년에 발효한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였다. 너무나 유명하여 안드레아 셰니에라는 이름은 삼척동자라도 알았지만 움베르토 죠르다노라는 이름은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이 오페라는 시인이 어떻게 하여 사회와 정치의 혼돈으로 희생될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죠르다노의 작품은 푸치니 스타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더러는 레온카발로와 흡사하다는 얘기를 한다. 안드레아 셰니에에 나오는 아리아들은 오늘날 연주회 레퍼토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다음번으로 내놓은 Fedora(훼도라)는 대인기였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Amor ti vieta 역시 연주회에서 자주 들을수 있다. 훼도라가 밀라노에서 성공을 거두자 전이탈리아의 수많은 극장들이 서로 훼도라를 공연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래서 Fedore fe d'oro(훼도라 훼 도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훼도라로 돈을 벌다’라는 뜻이다. 그는 밀라노에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훼도라'(미렐라 프레니, 알프레도 크라우스)

 

죠르다노의 오페라 수첩

Marina(1889. 공연되지 않았음) Mala Vita(비천한 생활: 1892. 로마 Argentina극장:1897년 Il voto<맹세>라는 타이틀로 변경) Regina Diaz(1894. 나폴리 Mercadante극장) Andrea Chénier(1896. 밀라노 Scala극장) Fedora(1898. 밀라노 Scala극장) Il Voto (1902. 나폴리 Bellini극장) Siberia(1903. 밀라노 Scala극장) Marcella(1907. 밀라노 Lirico극장) Mese Mariano(1910. 팔레르모 Massimo극장) Madame Sans Gére(1915. 뉴욕 Metropolitan Opera) Giove a Pompei(1921. 로마 La Pariola극장) La Cena delle Beffe(조롱하는 사람들의 만찬: 1924. 밀라노 Scala극장) Il Re(임금님. 1929. 밀라노 Scala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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