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레스피기, 오토리노

정준극 2008. 3. 11. 16:16
 

신고전주의, 신바로크주의 지향

오토리노 레스피기

 

 

 

볼로냐 출신의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는 작곡가이며 음악사학자였고 피아니스트였으며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비올라도 바이올린처럼 연주했다. 그는 ‘로마 3부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페라도 다수 작곡했다. 오페라 Lucrezia(열녀 루크레지아)는 그의 사후에 열녀 부인인 엘사(Elsa)가 완성한 것이다. 레스피기의 아버지는 볼로냐에서 피아노교사였다. 그래서 어린 레스피기는 아버지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는 볼로냐대학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전공했다. 작곡은 유명한 주세페 마르투치(Giuseppe Martucci)로부터 배웠다. 1900년, 20세기가 바야르호 문을 열던 해에 그는 러시아 생페테르부르트 제국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1902년에는 베를린에서 막스 브루흐(Max Bruch)로부터 작곡을 공부했다. 1913년 로마로 돌아온 그는 평생을 로마에서 살며 작곡에 전념하였다. 산타 체칠리아(Santa Cecilia)음악원 교수가 된 그는 1923-26년에는 음악원장을 역임했다. 레스피기는 산타 체칠리아에 있는 동안 정부의 요청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음악교과서를 집필했다. 교과서의 제목은 오르페우스(Orpheus)였다.


레스피기는 만년에 무솔리니의 파치스트당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처음에는 파치스트당의 의도에 따라 이탈리아의 음악가들은 새로운 무솔리니정권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자고 소리 높였었다. 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레스피기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중에서 제3부인 로마축제(Feste Romane)는 파치스트정권의 요청에 특별히 부응하기 위한 곡이라고 볼수 있다. 레스피기는 파치스트 차하에서 영광스런 이탈리아를 축제처럼 표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제의 분위기는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랄한 풍자까지 느낄수 있었다. 파치스트가 좋아할리 없었다. 그로부터 레스피기는 웬만한 활동은 접어두고 되도록 조용하게 지냈다. 아무튼 이 화려한 작품은 1929년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뉴욕필에 의해 초연되었다. 레스피기는 훌륭한 음악사학자였다. 특히 16-18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연혁을 정리하고 주요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석을 한 책을 발간했다. 레스피기는 로마에 있는 I Pini(소나무)라는 이름의 그의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1년후 그의 유해는 고향 볼로냐로 이장되었다. 볼로냐시가 모든 경비를 냈다.

 

 '화염'


 

레스피기의 오페라 수첩

● Re Enzo(1905) ● Semirama(1909) ● Marie Victoire(1913년 완성, 2004년 초연) ● La bella dormente nel bosco(1902) ● Belfagor(1923) ● La campana sommersa(1927) ● Maria Egiziaca(1932) ● La fiamma(1934) ● Lucrezia(1937. 사후에 부인인 Elsa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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