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풀랑크, 프란시스

정준극 2008. 3. 13. 10:35
 

풍자를 가미한 이상주의

프란시스 풀랑크


 

프란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1899-1963)의 작품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진면목이 점차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위트에 넘쳐 있으며 이상주의적이고 심지어는 풍자적 음향까지 담은 것이다. 두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당시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우 묵직한 오페라를 작곡할 수 있다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Les Dialogues des Carmelites(갈멜파 수녀의 대화)는 대표적이다. 드빗시처럼 풀랑크는 무척 과감한 음악 형태와 스토리를 도입하였다. ‘갈멜파 수녀의 대화’에서는 수녀들이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로틴의 칼날에 집단 처형당하는 장면이 있다. 사형장에 모인 군중들의 합창은 다만 ‘오’와 ‘아’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갈멜파 수녀의 대화' 


풀랑크는 어릴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의 놀라운 피아노 재능을 눈여겨 본 당대의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Ricardo Vines)는 당장에 15세의 풀랑크를 제자로 받아 들였다. 리카르도 비네는 아직도 약관인 풀랑크를 파리의 음악계에 소개하였다. 특히 사티(Satie)와 오릭(Auric)과의 교분은 청년 풀랑크의 지성과 음악적 재능을 한층 윤택하게 만든 것이었다. 풀랑크는 이같은 지성을 바탕으로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개발했다. 1차 대전후 풀랑크는 오네거, 미요 등과 함께 Les Six(레직스)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변화하는 패션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당시 프랑스 사회실정에 적합한 음악을 추구하였다. 미요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 계기였다. 두 사람은 비엔나에서 쇤베르크 학파에 속한 여러 신예 작곡가들과 만나 현대음악의 방향에 대한 의견교환을 했다. 이들과의 모임은 풀랑크의 후기 음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었다. 후기에 그는 여러 작곡가들의 성향을 골고루 섭취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프랑스에서의 베르디와 생-생을 닮고자 했으며 나아가 무소르그스키의 아이디어를 존경했다. 그는 또한 당시의 작곡가들인 스트라빈스키와 사티(Satie)의 음악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특히 드빗시와 라벨의 음악을 표방코자 했다.   

 

'사람의 소리' 


풀랑크의 오페라 수첩

● Les Mamelles de Tirésias(티레시아스의 유방: 1947) ● Les Dialogues des Carmélites(갈멜파 수녀의 대화: 1957) ● La voix humaine(사람의 소리: 모노드라마.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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