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 방랑하는 독일인

정준극 2008. 3. 14. 15:34
 

● 방랑하는 독일인

첫 번째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작품에서도 실패를 거둔 바그너였으나 그에게는 끈기가 있었다. 좋게 말해서 끈기이지만 실은 못 말리는 고집이었다. ‘독일이 나를 반기지 않는다면 내가 갈 데가 없는 줄 아는가?’라는 바이러스가 바그너에게 침투하였다. 어디로 갈까? 발트 3국 중의 하나인 라트비아(Latvia)로 갔다. 배우였던 첫 번째 부인 민나(Minna)와 함께 2년 동안 살았다. 한 편의 오페라를 쓰기에는 충분한 세월이었다. 그리하여 리엔치(Rienzi)가 나왔다. 그런대로 반타작 성공작이었다. 오페라 작곡에서는 발전을 보였지만 돈 버는 데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더구나 부인 민나는 사치를 즐겨하여 빚을 많이 졌다. 바그너는 빚쟁이들의 추적을 피해서 런던행 배에 올라타야 했다.

 

'방랑하는 화란인' 현대적 연출


바그너는 뱃사람이 아니었다. 발트해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는 거친 파도와 요동치는 풍랑으로 난파 직전이었다. 선실에서 뱃멀미에 지쳐 몸을 가누지 못하던 바그너에게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네덜란드(화란)를 지나던 때였다. 이렇게 하여 저 유명한 Der fliegende Holländer(방랑하는 화란인: The Flying Dutchman)가 탄생하였다. 평생 거친 바다를 방랑해야하는 저주 받은 선장의 이야기였다. 이 오페라의 서곡을 들어 보라! 노도와 같은 파도, 잔인할 정도의 풍랑...오케스트라는 이러한 정황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마치 바그너가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하고 영국으로 향하던 때처럼, 그리고 바그너의 파란 많은 인생방랑을 예견이나 하는 것처럼!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


다음 정박지는 파리. 2년 반의 비참한 생활이었다. 다른 작곡가들의 오페라에 대한 연습반주곡을 편곡하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였다. 그러나 파리에 있는 동안, 바그너에게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독일 전설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관심이 생긴 것이다. 초인간적인 신들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야기, 마법의 황금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그리고 근친상간! 바그너의 구미에 맞는 기가 막힌 소재들이었다. 파리에서 독일로 돌아온 바그너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옛 독일 전설에 근거한 Tannhäuser(탄호이저)와 Lohengrin(로엥그린)이 탄생했다. 바그너의 명성이 서서히 살아나게 되었다. 그러자 어쩐 일인지 바그너는 드레스덴에서 정치 문제에 간여하게 되었다. 반체제운동에 관여하였던 것이다. 바그너체포령이 내려졌다. 바그너는 야간도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3년 동안, 그는 고국인 독일에 돌아 갈수 없었다.

 

탄호이저의 한 장면


바그너는 스위스에서 얼마동안 지내다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도 지내는 등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파리로 돌아갔다. 마침 ‘탄호이저’ 공연이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파리에 갔다가 당분간 눌러 앉게 되었다. 하지만 오펜바흐의 캉캉 춤 오페레타에 절어있던 프랑스 백성들은 바그너에 대하여 박수를 아꼈다. 파리에서의 탄호이저 초연은 상상 이외의 실패였다.

'세계의 오페라 작곡가 > 독일-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이로이트 극장 오픈  (0) 2008.03.14
- 매드 루드비히와의 인연  (0) 2008.03.14
바그너, 리하르트  (0) 2008.03.14
플로토우, 프리드리히 폰  (0) 2008.03.14
오토 니콜라  (0)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