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밀뢰커, 칼

정준극 2008. 3. 14. 15:48
 

비엔나 오페레타 황금시대의 기둥

칼 밀뢰커

 

 

황금시대의 비엔나 오페레타를 이끈 또 하나의 위대한 주역은 칼 밀뢰커(Carl Millöcker: 1842-1899)이다. 원래 그는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였다. 밀뢰커의 플루트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은 주페는 당장 그를 비엔나의 요세프슈타트(Josefstadt)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하도록 했다. 그가 겨우 16세 때였다. 4년동안 요세프슈타트극장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었던 밀뢰커는 다시 주페의 주선으로 그라츠의 칼리아극장 지휘자가 되었다. 약관의 20세 때였다. 이곳에서 그는 첫 무대음악인 Der tote Gast(죽은 손님)를 발표하여 작곡가로서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25세 때인 1867년, 비엔나 하모니극장(Harmonie Theater)의 지휘자가 되었고 이 해에 첫 오페레타 Diana(다이아나)를 내놓아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어 부다페스트로 자리를 옮긴 그는 오펜바흐의 영향을 받은 Fraueninsel(여인의 섬)을 발표하여 오페레타 작곡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거지학생'


잠시 부다페스트에 머문후 고향인 비엔나로 돌아온 그는 유명한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후 10여년동안 오스트리아의 민속적 향기가 흠뻑 풍기는 오페레타를 작곡했다. 그의 대표작은 거지학생(Der Bettelstudent)이다. 밀뢰커의 이름을 국제적 오페레타 작곡가로 알린 작품이다. 1894년에 내놓은 Der Feldprediger(종군신부)는 비엔나보다 브로드웨이에서 더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대를 주도한 밀뢰커는 자기의 작품에 슈트라우스나 지레르(Ziehrer)처럼 왈츠, 폴카, 행진곡을 많이 사용하여 흥을 돋우었다. 밀뢰커는 19세기가 몇시간 남지 않은 1899년 12월 31일 오후 늦게 세상을 떠났다. 바로 몇 달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났다.

 

'거지학생'

 

밀뢰커의 오페레타 수첩

● Der Verwünschenen Schloss(마력의 성) ● Grafin Dubarry(듀바리 백작부인) ● Der Bettelstudent(거지핵생) ● Gasparone(갸스파로네) ● Der Feldprediger(종군신부) ● Der Vizeadmiral(부제독) ● Die sieben Schwäben(일곱명의 슈봐벤사람들) ● Der arme Jonathan(가난한 요나단) ● Das Sonntagskind(일요일의 아이) ● Der Probekuss(시험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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