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영향 받은 호머주의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분게르트
루르지방의 뮐하임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분게르트(Friedrich August Bungert: 1845-1915)는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인 호머(호메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오페라로 만드는 일에 도전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 주위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그래서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부유한 상인이며 시의회 의원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어린 아우구스트의 음악적 재능을 ‘불행한 일’이라고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돈 잘 버는 상인, 또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트를 지원한 것은 어머니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머니는 아우구스트가 열 살 때에 세상을 떠났다. 음악과 돈벌이를 놓고 아버지와의 의견충돌을 점점 더 심해졌다. 아우구스트는 고등학교시절인 16세 때에 뮐하임을 떠나 쾰른으로 갔다. 간단히 말하여 가출했다. 그는 쾰른에서 음악교사로 있는 페르디난트 쿠퍼라트의 문하에 들어갔다. 얼마후 페르디난트의 여동생이 아우구스트를 파리음악원에 들어갈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려웠다. 아버지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파리음악원에는 베를리오즈, 오버(Auber), 로시니와 같은 거장들이 후학을 지도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트는 재능에 비하여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조교로서 그럭저럭 지냈다. 파리에서 더 이상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합창단과 온천장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면서 그나마 생활했다. 그러다가 그의 첫 작품인 Hutton und Sickingen(후톤과 지킹겐)이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음악에 대한 의욕을 되찾았다. 아우구스트는 1874년 베를린으로 가서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했다.
'오디세이의 조국 귀환'(페네로페 왕비가 구혼자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다)
베를린에서 그는 피아노4중주곡 Eb장조로 1878년도 신인작곡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중에는 브람스도 있었다. 아우구스트는 상금을 받아 그렇게도 원했던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그는 처음에 페글리(Pegli)라는 도시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첫 오페라인 Aurora를 완성했다. 하지만 초연은 동료들의 주선으로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다. 라이프치히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어 제노아로 옮긴 그는 베르디를 만나 교분을 쌓게 되었다. 한편 그는 우연한 기회에 루마니아여왕을 알게 되어 그후 여왕의 지원을 받으며 작곡활동을 하였다. 루마니아여왕은 분게르트연맹(Bungert-Bund)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그의 작품을 진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시인 카르멘 실바(Carmen Sylva)를 만난 것도 이 때였다. 얼마후 분게르트는 카르멘 실바의 호의를 받아들여 라인강변의 폭스도르프(Folksdorf)로 거처를 옮겼다. 이로부터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아우구스트는 코믹 오페라를 접어두고 오페라다운 오페라에 도전하였다. 호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주축으로 Homerische Welt(호머의 세계)라는 대작을 구상한 것이다. 첫 파트인 일리아스(Die Ilias)는 아킬레우스와 클리템네스트라 편으로 나누어진다. 원래는 다섯편으로 계획했으나 두편만 완성했다. 두 번째 파트인 오디세이는 네편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의 하나가 ‘오디세이의 조국 귀환’이다. ‘오디세이의 조국 귀환’은 1896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이후 유럽의 여러 곳에서 무려 1백회 이상의 공연을 가지게 될 정도로 각광을 받은 작품이었다. 분게르트는 ‘호머의 세계’를 작곡함에 있어서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분게르트는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 페스트슈필하우스라는 전용극장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바드 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에 분게르트 전용극장을 지으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915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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