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하르트만, 칼 아마데우스

정준극 2008. 3. 14. 16:26
 

고통받는 내면 정신 표현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Karl Amadeus Hartmann: 1909-1963)은 고통받는 내면적인 정신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음악을 창조했다. 당시 나치는 그의 작품이 반사회적이라는 생각으로 그의 예술을 핍박했다. 이에 대하여 하르트만은 완전히 침묵만 한것은 아니었다. 그는 표현에 대한 자유를 매우 중요시했다. 나치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이상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발표했다. 이러한 표현자유사상과 작품활동은 다음 세대의 작곡가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뮌헨 출신의 하르트만은 처음에 사범학교에 다녔으나 음악에 뜻을 두어 뮌헨음악원(Akademie für Tonkunst)에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헤르만 셰르헨(Hermann Scherchen)과 각별한 친분을 쌓으며 현대음악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며 지냈다.


그의 청년 시절을 말함에 있어서 Die Juryfreien(유리프라이엔) 콘서트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이 그룹의 창단멤버였다. 이 활동을 통하여 그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편파적이고 집단적 군중심리에 의한 비평이나 판단도 수용하지 않고 다만 순수한 표현의 자유만을 추구하였다. 1933년부터 2차대전중인 1942년까지 독일에서는 하르트만의 작품 공연이 없었다. 나치의 압력에 의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36년 제네바실내악경연대회에 ‘현악4중주곡 1번’을 제출하여 모든 응모작품을 물리치고 대상을 받았다. 1942년부터는 비엔나의 안톤 베베른(Anton Webern) 문하에서 현대음악에 대하여 공부했다. 이때에 그는 자기의 갈 길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그는 Musica Viva 콘서트 시리즈를 창설하여 1963년 세상 떠날 때까지 운영하였다. 이 시리즈는 주로 나치에 의해 금지되었던 음악들을 소개하는데 주력한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포럼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무대작품은 두편이다. Das Wachsfigurenkabinett(밀납인형 제작공 박물관: 1920-30년에 발표한 5편의 짧은 오페라)와 Simplicius Simplicissimus(최단순의 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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