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동유럽

울만, 빅토르

정준극 2008. 3. 18. 17:20
 

아우슈비츠의 희생자

빅토르 울만

 


작곡가, 피아니스트, 합창지휘자, 오케스트라지휘자, 음악평론가인 빅토르 울만(Victor Ullmann: 1898-1944)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에 희생된 체코의 유태인 음악가이다. 울만은 1889년 1월 1일 체코의 테진(Tesin: Teschen: 당시는 오스트리아의 실레지안소속)에서 태어났다. 사실 그의 부모는 모두 유태인이지만 울만이 태어나기도 전에 현실성 있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합스부르크제국에 동화된 유태인으로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군대에 들어가 여러 전공을 세웠으며 나중에는 대령으로 승진하고 귀족이 되었다. 그런 연고로 울만은 비록 어린 시절을 고향 테진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지냈지만 1차대전이 터진 1914년에는 비엔나로 와서 계속 살았다. 울만은 비엔나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한편 비엔나음악대학에서 쇤베르크로부터 작곡기법을 배웠다. 이후 1920-27년에는 알렉산더 쳄린스키(Alexander Zemlinsky)의 조수로서 프라하의 신독일극장(현재의 프라하국립오페라극장)에서 활동했다. 프라하에서 쳄린스키와의 오랜 교류는 울만의 음악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었다. 체코에서 오페라경력을 쌓은 울만은 1930년대 초에 슈투트가르트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유태인인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치는 1933년 울만을 프라하로 돌아가도록 했다. 프라하에 돌아온 울만은 라디오방송국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한편으로는 보헤미아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워왔다.  


그러던중 나치가 체코를 점령하자 울만은 1942년 테레지안슈타트 게토로 강제 이송되었다. 테레지안슈타트(Thersianstadt)는 원래 합스부르크의 프란츠 요셉2세가 터키의 침공을 막기 위해 건조한 요새마을이었다. 울만은 강제수용소에 있으면서도 음악가로서 열심히 활동하여 수용소의 유태인들에게 많은 격려와 감동을 주었다. 얼마후 나치는 울만을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보냈고 결국 울만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10월 18일 가스실에서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울만의 주요작품은 거의 모두 테레지안슈타트 강제수용소에서 작곡된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한참후에 영국에 ‘빅토르 울만 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울만뿐 아니라 테레지안슈타트 강제수용소에서 활동했던 ‘테레지안현악4중주단’과 피아니스트들로서 나치에 희생된 다른 유태인 음악가들도 기념하고 있다. 빅토르 울만의 오페라로는 3편이 남아 있다. The Fall of the Antichrist(적그리스도의 멸망), The Broken Jug(깨어진 잔), 그리고 The Emperor of Atlantis(아틀란티스의 황제)이다. 모두 부조리한 시대와 사회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아틸란티스의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