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의 최고 바리톤 Giuseppe Danise (주세페 다니세)
주세페 다니세(1883-1963)는 이탈리아 바리톤의 황금시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잊힌 인물이며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그는 분명히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위대한 바리톤이었다.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는 1906년 벨리니극장에서 알피오(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데뷔한 이래 이탈리아 전국에서 뜨거운 갈채를 받는 주도적 바리톤으로 부상하였다. 1920년 11월, 그는 ‘아이다’의 아모나스로로서 역사적인 메트로 데뷔를 하였다. 이때 아이다는 에미 데스틴(Emmy Destin)이었다. 에미 데스틴과의 공연(共演)은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가장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로부터 그는 메트로에 12년 동안 있으면서 당대의 드 루카(De Luca), 스코티(Scotti), 바시올라(Basiola), 루포(Ruffo), 티베트(Tibbett) 등과 함께 대형 바리톤 역할을 나누어 하였다. 과연 이탈리아 바리톤의 황금시기였다. 어느 시즌에 평론가들은 그가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맡은 카를로 제라르드(Carlo Gerard)에 대하여 ‘진정한 예술가로서 노래를 부른 사람이다. 진정한 인간으로서 연기를 한 사람이다’라고 찬사를 보낸 일이 있다. 그는 드 루카의 서정성, 스코티의 극적인 열정, 스트라키아리의 발성을 혼합한 뛰어난 바리톤이었다.
1932년 1월, 메트로에서 루나백작(일 트로바토레)으로 메트로 고별 공연을 가진후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즉각적으로 라 스칼라에서 주역을 맡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후 13년 동안 그는 이탈리아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빛나는 활동을 하였으며 간혹 브라질의 초청을 받아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하였다. 그는 1947년 소프라노 비두 사야오(Bidu Sayao)와 결혼한후 자기의 무대 생활보다도 비두 사야오의 경력 관리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뉴욕에서 유망주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중에 가장 유명하게 된 제자는 레지나 레즈니크(Regina Resnick)였다. 그의 음성이 상당기간 잊혔던 것은 그가 남긴 음반이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RCA 빅터와 같은 당시 유명 레코드회사의 음반취입 제안을 사양하고 친구가 경영하는 브룬스위크라는 무명의 레코드회사와 취입하였다. 결국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그의 레코드는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 당시의 음반을 현대 기술로 재생하여 CD로 내놓게 되었다. 역시 현대는 기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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