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바리톤의 제왕 Marcel Journet (마르셀 주르네)

정준극 2008. 3. 25. 10:01
 

바리톤의 제왕 Marcel Journet (마르셀 주르네)

 


에치오 핀자(Ezio Pinza)는 마르셀 주르네에 대하여 ‘고음에서부터 저음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유연하고 투명하게 노래 부르는 사람은 일찍이 본적이 없다’면서 찬사를 보냈다. 빅터 지라르(Victor Girard)는 ‘주르네의 음성은 최고의 와인과 같다. 세월이 지날수록 완숙미가 더해지는 경우이다. 정말로 특유의 바리톤이다. 때문에 모두에게 놀랄만한 감동을 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저음은 베이스였고 그의 중음은 바리톤이었다. 1867년 프랑스 니스 부근의 그라쓰(Grasse)에서 태어난 마르셀 주르네는 파리음악원에서 공부한후 벨기에의 베지에르(Bézières)에서 ‘라 화보리타’(도니제티)의 발타자르(Balthazar)를 맡아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그가 25세 때였다. 그이후로부터 그는 벨기에의 라 몬네(La Monnaie)에서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베이스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국제적인 명성은 데뷔 5년후인 1897년 코벤트 가든에 출연하고부터였다. 1백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베이스라는 평을 받았다. 메트로 데뷔는 1900년이었다.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

 

주르네는 메트로에서 ‘위그노’(마이에르베르)의 마르셀과 생 브리(St Bris), ‘탄호이저’의 랜드그레이브(Landgrave), ‘파우스트’(구노)의 메피스토펠레, ‘햄릿’(토마)의 클라이디스, ‘필레몬과 바우치스’(구노)의 쥬피터와 불칸(Vulcan), ‘라 보엠’(푸티니)의 콜리네와 쇼나르, ‘로미오와 줄리엣’(구노)의 캬풀레와 로랑신부, ‘돈 조반니’(모치르트)의 레포렐로와 콤만다토레(석상), ‘카르멘’(비제)의 에스카미요와 주니가(Zuniga), ‘람메무이의 루치아’의 라이몬도,  ‘피가로의 결혼’의 돈 바질리오, ‘마농’의 데 그류 백작, ‘라 조콘다’(폰키엘리)의 알비세, ‘로렐라이’(카탈라니)의 로돌포, ‘라인의 황금’(바그너)의 파프너(Fafner), ‘아이다’(베르디)의 파라오왕 람피스, ‘일 트로바토레’(베르디)의 훼란도, ‘아프리카의 여인’에서 대제사장 등등 수없이 많은 역할을 맡아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메트로에서 신성 베이스 훼오도르 샬리아핀이 모든 베이스 역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칭병하고 메트로를 떠났다.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1차대전 기간 동안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파리오페라에서도 다른 두명의 베이스와 경쟁을 해야 했다. 안드레 그레쓰(Andre Gresse)와 장-프란시스크 델마(Jean-Francisque Delmas)였다.

 


'파르지팔'에서 클링조르

 

동료들과의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파리를 떠나 몬테칼로로 갔다. 몬테칼로에서는 다행하게도 경쟁자가 없어서 무려 6년동안 최고의 베이스로 활동하였다. 그는 또한 라 스칼라에도 간혹 등장하였다. 보이토의 ‘네로네’(Nerone) 초연에서 시몬 마고(Simon Mago)를 맡은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그는 1933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무대에서 활동을 했다. 그는 42년이라는 기간 동안 오페라에 대한 열정을 머금으며 살았다. 그는 여러장의 음반을 남겨놓았다. 베이스의 전형을 보는 듯한 레코딩이었다. 주르네는 훼오도르 샬리아핀과 함께 당대 최고의 베이스였다. 그는 당대의 카루소, 제랄딘 화라, 마르티넬리, 가드스키, 안코나, 호머, 임스(Eames), 클레망(Clement), 테트라치니, 베짜니, 안쏘 등과 함께 레코딩을 하였다. 1920년부터 1926년 사이에 취입된 레코드는 그의 음성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샤펜티어의 '루이제'에서 아버지

 

그는 장식음을 처리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음색은 순수하였으며 공명이 잘되고 강력했다. 또한 그는 폭넓은 음역을 가졌다. 그는 저음에서 낮은 E음으로부터 중간C음을 넘어 G음까지 자유스럽게 소리를 냈다. 그래서 토니오(팔리아치)와 스카르피아(토스카)의 역할도 아무런 문제없이 맡을수 있었다. 그의 수많은 레코딩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발퀴레에서 보탄(Wotan)이 이별하면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역사상 최고의 바그너 레코딩으로 인정받고 있는 음반이다. 발퀴레에서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감미로웠으며 충분한 감정표현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평론가인 막스 드 쇼앙세는 ‘마르셀 주르네의 소리는 눈부시게 찬란한 붉은 보석과 같다’고 말한바 있다. 그는 바리톤의 제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