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이탈리아의 영광 Mattia Battistini (마티아 바티스티니)

정준극 2008. 3. 25. 10:03
 

이탈리아의 영광 Mattia Battistini (마티아 바티스티니)

 

  

전설적인 이탈리아의 바리톤 마티아 바티스티니(1856-1928)는 1878년 로마의 아르헨티나극장에서 ‘라 화보리타’의 알폰소(Alfonso)로 데뷔한 이래 1927년 세상을 떠나기 1년전까지 거의 반세기동안 변치 않는 열정과 음성으로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압도하였던 위대한 성악가였다. 그는 1892년부터 1910년까지 8년동안 러시아에 머물면서 제정러시아의 짜르(황제)를 비롯한 귀족사회로부터 각별한 찬미를 받았다. 바타스티니는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를 두차례나 방문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미국 메트로의 초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르디는 바티스티니에 대하여 ‘나는 작곡을 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내가 작곡한 것을 표현하는 사람이다’면서 그의 뛰어난 재능과 위대한 역량을 찬양하였다. 그는 엄청난 호흡 조절과 대단히 폭이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파사지에 있어서 대단히 기민하였고 장식적인 음을 붙이는 기교에 뛰어났다. 그가 취입한 음반이 상당수 남아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돈 조반니

 

바티스티니는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로마대학교 해부학교수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바티스티니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의 신동으로 불릴 만큼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결국 그는 당대의 성악교수 벤체슬라오 페르시키니(Venceslao Persichini)의 가르침을 받으므로서 성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벤체슬라오 페르시키니는 프란체스코 마르코니(Francesco Marconi), 티타 루포(Titta Ruffo), 주세페 데 루카(Giuseppe de Luca)와 같은 인재를 길러낸 성악교사였다. 바티스티니는 이미 학생시절에 일반 연주회에 출연하여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22세때인 1978년 도니제티의 ‘라 화보리타’에 출연한 것은 로마 음악계의 주목을 받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후 3년 동안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방문하며 ‘운명의 힘’,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일 과라니’(Il Guarany), ‘글리 우제노티’(Gli Ugenotti), ‘아프리카 여인’(L'Africaine), ‘청교도’, ‘람메무어의 루치아’, ‘아이다’, ‘에르나니’ 등에서 바리톤 역할을 맡았으며 몇편의 세계초연 오페라에도 출연하였다. 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 테너로서는 대단한 경력이었다.  

 

'돈 카를로'에서 포사

 

1881년, 그는 처음으로 남미를 방문하여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힘에 넘친 음성과 타고난 멋진 모습으로 관중들을 열광케 했다. 그는 거의 1년을 남미에서 활동한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도 공연했다. 주로 맡은 역할은 알마비바 백작(세빌리아의 이발사)이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공연이었다. 1883년, 그는 코벤트 가든에 진출하였다. 이곳에서 마르첼라 셈브리히, 프란체스코 마르코니, 에두아르 드 레즈케, 아델리나 패티 등 당대 거장들의 상대역으로 오페라 무대를 장식하였다. 1888년 그는 다시 남미를 방문하였다. 대서양을 건넌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는 또 다시 미국과 남미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대신 제정 러시아와 동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바르샤바, 모스크바, 생 페테르부르그를 여행하였으며 기차로 여행할 때에 여행 가방이 무려 30개가 넘어 마치 왕자나 공작의 여행을 방문케 하였다. 가방마다에는 M.B.라는 이니셜이 새겨 있었으며 이들 가방에는 각기 다른 역할에 맞는 의상이 꽉 차 있었다. 그는 러시아를 23회나 방문하였다. 1차 대전후, 그는 자체의 오페라단을 만들어 마드리드, 비엔나, 프라하, 부다페스트, 베를린, 바르셀로나, 리스본 등에서 공연하였다. 그의 오페라 무대 경력은 거의 반세기(50년)에 이른다. 마지막 공연은 세상 떠나기 바로 1년전이었다. 71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에 비하여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를 ‘이탈리아의 영광’(La Gloria d'Italia), ‘바리톤의 황제‘(Il Re dei Baritoni)라고 불렀다.

 

토마의 '햄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