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완벽한 바리톤 Willi Domgraf-Fassbänder (빌리 돔그라프-화쓰밴더)

정준극 2008. 3. 25. 10:42
 

완벽한 바리톤 Willi Domgraf-Fassbänder (빌리 돔그라프-화쓰밴더)

 

 


독일의 바리톤인 빌리 돔그라프-화쓰밴더(1897-1978)는 리골레토로서 세상을 사로잡은 인물이다. 그의 아름다운 음성은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탁월한 레가토 테크닉과 놀랄만한 호흡 조절로 그는 완벽한 바리톤 음색을 창조해 냈다. 또 다른 그의 특징은 무거운 톤을 가볍게 처리할수 있다는 것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의 유명한 아리아인 Largo al factotum을 들어보면 알수 있다. 피가로에서 그는 자신만의 특기인 팔란도(Parlando: 이야기하는 듯 노래하는 것) 테크닉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가 남긴 음반들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피가로, 실비오, 알마비바, 파파게노, 루나 백작, 볼프람 등의 아리아는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로테 쇠네(Lotte Schoene), 세니아 벨마스, 마르가리테 테셰마허, 마리아 체보타리 등과 함께 취입한 듀엣도 더할수 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매력적인 피가로 역할

 

독일 아헨에서 태어난 빌리 돔그라프-화쓰밴더는 원래 지휘자, 또는 교회음악사학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노래해라! 노래해!’라고 적극 권장하는 바람에 성악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물론 자신도 노래로 인생을 개척해야겠다고 다짐했음은 물론이었다. 1922년 그는 고향 아헨에서 알마비바 백작(피가로의 결혼)으로 첫 오페라에 데뷔하여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그는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 전속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리톤간의 경쟁이 심하여 베를린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피가로, 알마비바 백작, 리골레토, 볼프람, 돈 조반니, 루나 백작, 레나토, 에스카미요, 할레퀸(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오레스트, 스카르피아, 마르첼로, 암포르타스, 한스 작스 등 실로 여러 특성의 역할을 맡으며 충실하게 경력을 쌓아갔다. 1927년 그는 슈투트가르트로 옮겼으며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바리톤으로서 지냈다. 그러다가 ‘라 보엠’과 ‘카르멘’에서 함께 공연했던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가 ‘기왕 칼을 뽑았으면 베를린으로 가라!’고 적극 권장하는 바람에 베를린으로 발길을 돌렸다.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는 몇 년전 떠났던 돔그라프-화쓰밴더의 등장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계약을 서둘렀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바리톤으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리골레토는 단연 최고였다.

 

리골레토로의 변신

 

돔그라프-화쓰밴더의 국제적 명성은 날로 높아갔다. 글린드본을 비롯한 국제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끊임없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계속적인 인기와  함께 영화에도 출연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팔려간 신부’로서 상대역인 아름다운 야르밀라 노보트나(Jarmila Novotna)였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37년, 토스카니니는 잘츠부르크에서의 ‘마적’에 돔그라프-화쓰밴더를 파파게노로 초청하였다. 파파게노는 대 성공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는 1942년 명예로운 캄머쟁거(Kammersänger)의 칭호를 받았다. 2차 대전이 끝난후 그는 특히 비엔나에서 환영을 받았다. 비엔나에서 그는 볼프람, 파파게노, 포드(활슈타프)를 맡아 오페라 팬들을 기쁘게 하였다. 1950년 무대를 은퇴한 그는 탁월한 무대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한편 뉘른베르크음악원에서 오페라 클라스를 개설하여 후진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배우 자비네 페터스(Sabine Peters)와 결혼했으며 1933년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은 나중에 유명한 메조소프라노가 되었다. 브리기테 화쓰밴더(Brigitte Fassbaender)이다. 빌리 돔그라프-화쓰밴더는 1978년 향년 81세로 뉘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