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오토 비너(Otto Wiener)

정준극 2011. 1. 5. 12:45

오토 비너(Otto Wiener)

바그너 역할에서 뛰어난 기량 과시

 

 

오토 비너(1911-2000)는 비엔나에서 태어난 바리톤으로서 특히 바그너의 역할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오토는 여섯 살 때에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멤버로 들어가 노래 수업을 했으며 이어 비엔나음악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오토의 아버지는 그가 수의과 의사가 되기를 바랐으나 오토는 음악의 길을 택하였다. 그는 오페라 바리톤이 되기 위해 오페라 가창, 오페라 드라마, 오페라 무대 기법, 오페라 연기, 드라마 언어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내용들을 철저하게 공부하였다. 오페라에의 데뷔는 1953년 그라츠에서 시몬 보카네그라의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그후 그는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의 오페라극장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며 1957년부터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1960년부터는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서 활약했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는 1955년부터 참가하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프랑크 마틴(Frank Martin)의 오페라 Le mystere de la Naivite (예수 탄생의 신비)의 초연에 출연하였다.

 

오토 비너가 바그너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7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 참가하고서부터였다. 오토는 바이로이트에서 1963년까지 한스 작스(뉘르베르크의 명가수), 군터(신들의 황혼), 보탄(라인의 황금), 화란인(방랑하는 화란인)을 맡아 찬사를 받았다. 1962년에는 한스 작스의 역할로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무대에 섰다. 그리고 1964년에는 글린드본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카프리치오의 La Roche 역할을 맡았다.

 

한스 작스 역할의 오토 비너

 

오토 비너는 1950년대로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던 영웅테너로서 대체로 깊고 어두운 음성의 역할을 소화하였다. 그는 한스 작스, 군터, 보탄 등의 역할 이외에도 '장미의 기사'에서 화나날, 로엔그린에서 헤르루퍼, '포페아의 대관'에서 오타비오 등을 맡아 기염을 토했다. 그는 여러 편의 오페라 취입에 참가하였으며 오페라가  아닌 음반 취입으로서는 베토벤의 장엄 미사곡과 교향곡 제9번, 하이든의 오라토리아 '그리스도의 마지막 칠언', 그리고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 등이 있다. 그는 1976년 은퇴하여 지내다가 2000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