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슈타트팔레

헤르메스빌라 (Hermesvilla)

정준극 2008. 4. 21. 10:12

헤르메스빌라 (Hermesvilla)

꿈의 궁전(Schloss der Träume)

 

헤르메스 빌라는 말이 빌라이지 궁전이다. 빌라라고 해서 우리처럼 연립주택 또는 해변이나 산속의 임시거처 등등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헤르메스 빌라는 궁전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궁전(슐로스)라고 부를 것이지 어찌하여 빌라라고 불렀는가? 프란츠 요셉 황제가 빌라라고 부르자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한편, 헤르메스 빌라를 궁전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는 것은 이 빌라에 저 유명한 엘리자베트(씨씨) 황비와 프란츠 요셉 황제와 그 가족들이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빌라는 프란츠 요셉 황제가 엘리자베트(씨씨) 황비에게 선물한 별장궁전이다. 엘리자베트 황비는 비엔나의 궁전들, 즉 호프부르크 또는 쇤브룬 궁전에서 지냈지만 지나친 격식과 간섭을 싫어하였다. 그리고 비엔나의 궁전에는 자기에게 부정적인 시어머니가 살고 있어서 더 싫어했다. 시어머니인 조피(실은 엘리자베트의 이모)는 엘리자베트가 아이를 낳자 엘리자베트의 손에 맡겨서 기르면 안된다고 주장하여서 어린 아기를 엄마에게서 떼어 놓아 별도로 길렀다. 엘리자베트로서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참을수 밖에 없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엘리자베트는 비엔나의 궁전들이 싫어서 기회만 있으면 비엔나를 떠나 여행을 다녔다. 헝가리에도 가고 그리스에도 가고 독일이나 스위스에도 갔으며 영국에도 가서 지냈다. 엘리자베트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 프란츠 요셉 황제는 마치 그런 엘리자베트의 심정을 헤아리기나 한듯 비엔나의 서남쪽 한적한 곳에 엘리자베트를 위해 궁전을 짓고 이제부터는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오붓이 지내자고 했다. 그것이 헤르메스빌라이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헤르메스빌라를 '꿈의 궁전'(Schloss der Träume)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부인 씨씨와 자녀들과 함께 단란하게 지낼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헤르메스빌라

 

헤르메스빌라는 비엔나의 서남쪽 라인츠 동물원(Lainzer Tiergarten) 구내에 있는 황실 사냥별장 성격의 궁전이다. 넓은 숲과 들이 있어서 사냥터로서는 제격인 곳이다. 티어가르텐은 동물원이라는 뜻이지만 동물원이라기보다는 높은 사람들의 사냥을 위해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 꿩 따위를 방목하는 장소라고 보면 된다. 헤르메스빌라는 1886년(우리나라에서 배재학당이 고종황제로부터 교명을 받은 해)에 시골 장원(莊園) 스타일로 유명한 건축가 카를 폰 하제나우어(Karl von Hasenauer)가 설계했다. 내부 장식과 그림들은 주로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의 작품이다. 현재 헤르메스빌라에는 엘리자베트왕비 기념박물관이 들어서 있고 꼭대기 층에는 의상박물관이 있다. 헤르메스빌라는 비엔나시 박물관 부서의 소관이므로 혹시 무슨 특별 전시회를 가지고 싶으면 헤르메스 빌라의 방들을 이용할수 있다. 비엔나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헤르메스빌라로 가려면 전차 62번을 타고 마이들링(Meidling)에서 내린후 62A 버스를 갈아타고 두어 정류장 지나서 라인처 티어가르텐 정문 앞에서 내린 후에 그곳에서 걸어서 15분 정고 가면 만난다. 

 

헤르메스 빌라와 헤르메스 조각

 

궁전의 이름을 헤르메스빌라라고 붙인 것은 정원에 있는 백색 대리석의 헤르메스 조각상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이지만 여행자 · 목동 · 체육 · 웅변 등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와 프란츠 요셉 황제 및 엘리자베트 황비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엔나의 궁전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명칭으로 붙인 것은 특이한 케이스이다. 현재의 헤르메스 빌라가 있는 장소에는 예전에 실제로 자그마한 사냥숙사가 있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주변이 조용하고 자연과 잘 어울릴수 있는 곳이어서 이곳에 엘리자베트 황비를 위한 아름다운 빌라를 짓기로 결정했다. 새로 짓는 빌라의 명칭은 '빌라 발트루'(Villa Waldruh)라고 부르기로 했다. 숲속의 휴식을 위한 빌라라는 뜻이다. 건축공사는 1882년에 시작되었다. 빌라의 명칭은 1885년에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빌라 헤르메스'라고 바뀌었다. 정원에 있는 헤르메스 대리석상은 엘리자베트 황비가 베를린에 있는 조각가 에른스트 헤르터(Ernst Herter)에게 직접 부탁하여 만들도록 한 것이다. 엘리자베트 황비는 헤르메스 조각상이 놓여질 위치까지 정해주었다. 그리고 조각상의 제목도 '수호자 헤르메스'(Hermes der Wächter)라고 지었다. 건물에 사용될 여러 석재들은 오스트리아의 여러 지방에서 가져온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당 계단에 사용되는 석재는 뵐러스도르프에서 가져 온 것이다. 카이저슈타인브루흐에서 가져온 카이저슈타인(Kaiserstein)도 있다. 헤르메스 빌라는 착공된지 4년 후인 1886년에 완성되었다. 본채뿐만 아니라 마굿간 등 부속 건물들도 완성되었다. 마굿간은 특별히 엘리자베트 황비가 승마를 즐겨하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지었다. 그리하여 엘리자베트 황비는 1887년부터 1898년 그가 스위스의 제네바 호반에서 살해될 때까지 거의 매년 봄철에 헤르메스 빌라를 찾아와서 머물렀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였다. 어떤 때는 단 며칠만 머무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몇 주간동안 머물렀다.

 

씨씨 침실의 바로크 침대

 

프란츠 요셉 황제는 헤르메스 빌라를 조성하면서 여간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들판의 언덕이나 구덩이는 모두 평평하게 만들도록 했고 두더지가 파놓은 굴들도 모두 찾아서 메꾸도록 했다. 엘리자베트 황비가 승마할 때에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큰길에서 빌라로 들어가는 길의 가로등은 비엔나에서는 처음으로 전등을 설치한 곳 중의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헤르메스 빌라는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전화를 연결한 건물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비엔나를 점령하였을 때 헤르메스 빌라도 예외 없이 소련군의 약탈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헤르메스 빌라는 황폐해 졌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63년, 헤르메스 빌라에서 디즈니 영화 '백말들의 기적'(Miracle of the White Stallions)이 촬영되었다. 헤르메스 빌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민간인들이 협동하여 헤르메스 빌라를 복구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정부당국도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었다. 복구작업은 1968년부터 시작되어 1974년에 마무리되었다. 그로부터 헤르메스 빌라는 하나의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특히 합스부르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비운의 황비 씨씨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는 장소가 되었다.

 

본채와 씨씨 조각상

 

헤르메스 빌라의 벽화들은 한스 마카르트, 구스타브 클림트, 빅토르 틸그너 등 유명한 화가들이 동원되어 완성했다. 1층(우리 식으로는 2층)에는 씨씨의 침실이 있다. 처음에는 욕조와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으나 10년 후에 씨씨의 지시로 설치되었다. 침실 옆에는 운동실(Turnzimmer)이 있다. 호프부르크에도 씨씨의 운동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운동실에는 평행봉, 철봉, 링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씨씨가 사용하던 운동기구는 없지만 벽화를 보고 운동실이었음을 금방 느낄수 있다. 벽면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탈란테(Atalante)가 달려가서 황금사과를 집어 드는 장면, 디스쿠스(Discus)가 원반을 던지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디스쿠스는 원반을 너무 멀리던진 바람에 그의 할아버지가 원반에 맞아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벽화는 폼페이 스타일로서 아우구스트 아이젠멩거(August Eisenmenger), 위고 샬르몽(Hugo Charlemont), 아돌프 활켄슈타이너(Adolf Falkensteiner) 등이 그렸다. 씨씨의 침실에는 다른 방들과는 달리 아직도 여러 개의 옛 가구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거대한 바로크 스타일의 침대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 여제 자신이 사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침대는 헤르메스 빌라로 오기 전에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암슈테텐(Amstetten) 인근의 슈트렌버그(Strenberg)의 우편국 보관실에 있었다. 침실의 벽화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의 장면들을 한스 마카르트가 그린 것이다. 침실에서 나선식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아랫층에 이르며 이어 정원으로 나갈수 있다. 살롱에는 프란츠 마츄(Franz Matsch), 구스타브 클림프, 게오르그 클림트가 합작하여 그린 '봄'이 있다. 그런데 전쟁 중에 파손되어서 복구한 것이다.

 

살롱

 

빌라의 전면에는 울리케 트루거(Ulrike Truger)가 제작한 엘리자베트 황비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2001년에 제작되어 라인처 티어가르텐에 있던 것을 2006년에 헤르메스 빌라로 옮긴 것이다. 조각상은 '의무-도피-자유'(Zwang-Flucht-Freiheit)라는 테마를 포함하고 있다. 엘리자베트 황비의 내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높이 2. 5 미터, 무게 6. 5 톤의 이 조각상은 지금까지 나온 씨씨의 조각상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는 씨씨의 낭만적인 모습만을 그린 조각상과는 달리 씨씨의 번민에 중점을 두어 표현했다고 한다. 마굿간은 씨씨의 말들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마굿간은 1950년 이후부터 2005년까지 스페인 승마학교 리피짜너 말들의 임시 마굿간으로 사용되었다. 리피짜너 말들은 7주간의 휴가기간 동안 헤르메스 빌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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