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슈타트팔레

호텔 임페리알 (Hotel Imperial)

정준극 2008. 4. 21. 10:13

호텔 임페리알 (Hotel Imperial) - 팔레 뷔르템베르크(Palais Wuertemberg)

 

호텔 임페리알의 위용

 

캐른트너 링 16번지의 호텔 임페리알(제국 호텔)은 원래 뷔르템베르크(Wuertemberg)의 필립 공작(1838-1917)과 부인 마리 테레제(Marie Therese: 1845-1927)의 비엔나 시내 궁전으로 건설한 건물이다. 마리 테레제는 합스부르크의 공주였다. 당시 부유한 왕족이나 귀족들 중에는 지방 영지에 저택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 별도로 궁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1863년 유명한 건축가 하인리히 아담(Heinrich Adam)이 완성한 이 건물의 원래 명칭은 팔레 뷔르템베르크(Palais Wuertemberg)였다. 그러나 공작 부부는 이 새로운 궁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으로 옮겨와 산지 5년후에 매물로 내놓았다. 1873년 비엔나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호텔로 개조하고 호텔 임페리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오프닝에는 프란츠 요셉 황제가 참석하였다. 1928년에는 원래의 건물에 두 층을 증축하였다. 호텔 임페리알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화를 말해주듯 화려하고 장엄하다.

 

객실

 

호텔 임페리알에 투숙했던 저명인사들은 수도 없이 많아 일일이 거명하기가 힘들다. 특별한 것은 리하르트 바그너가 이 호텔에 묵으면서 오페라 탄호이저 등을 작곡했다는 명판이 호텔 정면의 벽에 붙어 있다. 구스타브 말러는 이 호텔의 레스토랑에 자주 들려 식사를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명을 남긴 인물들도 체류하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위해 비엔나에 왔을 때 이 호텔에 묵었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비엔나 미술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이 호텔에서 일용직으로 일당을 받고 일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악명 인사는 베니토 무쏠리니(Benito Mussolini)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비엔나를 방문한 무쏠리니는 연합군의 공습이 심화되자 독일 공정대의 특별 구출작전으로 호텔 뒷문을 통해 간신히 피신했다. 9월 13일의 사건이었다. 당시 독일 공정대의 작전명은 Unternehmen Eiche(떡갈나무 작전)이었다. 2002년 태평양전쟁의 전범수괴인 일본의 히로히토 부부가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에도 이 호텔에 투숙하였다. 그리고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도 비엔나에 왔을 때 이 호텔에서 묵었다. 가다피는 혹시나 신변의 위험이 있을지 몰라서 다른 사람들은 투숙하지 못하게 객실을 거의 모두 예약해서 차지했다고 한다.



호텔 임페리알 카페. 한쪽에는 씨씨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텔 임페리알은 타르트 임페리알(Tart Imperial: 임페리알 토르테)이라는 초콜릿 케이크로 유명하다. 1873년 프란츠 요셉 황제가 호텔 오프닝에 참석하였을 때 어떤 이름없는 요리 견습공이 황제를 위해 만든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황제는 그 토르테를 맛보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고 국빈을 위한 만찬에 후식으로 내놓도록 했다. 타르트 임페리알의 제조법은 지금까지 비밀이다. 타르트 임페리알은 두달 동안 두어도 신선하다. 바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기념하는 바(Bar)이다. 칵테일 마리아 테레지아의 오리지널을 맛볼수 있다. 팬케이크는 카이저 슈마른(Kaiser Schmarn)이라고 한다.   

 

임페리알 호텔 리셉션